• 신작시
  • 신작시
  • HOME > 신작시 > 신작시

2021년 11월호 Vol.05 - 우남정



  

秋日抒情

 

우남정

 

 

  가을의 절정은 운곡서원의 은행나무가 잎을 흩뿌릴 때라고 말하지요 세상의 호사가들이 은행나무를 보러옵니다 우수수 금전金錢을 던져주듯 팔을 흔드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온몸으로 받아낼 듯 팔 벌리고 입 벌리고 웃음이 만발한데요 노란 잎들이 나비 떼처럼 날아다닙니다 와아ᆢ, 대박! 젊은 커풀이 횡재한 듯 탄성을 지릅니다 돈벼락 맞는 기분이 이런 것이라는 듯 황홀경에 빠졌어요 하지만 정작 받아 든 것은 책갈피에 끼울 고운 노랑 하나입니다 낙엽은 서원의 마당과 기와지붕과 툇마루까지 떨어져 쌓였는데 사람들은 웬일인지 은행나무 배경으로 이렇게 저렇게 인생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는데 서원철폐령에도 은행나무는 300년을 지키며 가세를 늘렸다니 대단하지요 은행나무는 몰래 은행을 키우나 봅니다 주식에 전 재산을 날린 그가 떠나던 날도 노잣돈처럼 은행잎이 흩날렸어요 잎 피고 지고 수수만년 저 나무가 신생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요 금고 같이 단단한 은행의 외피 속에 누가 페리도트를 숨겨 놓았을까요 열매에서 악취가 나는 것도 아이러니지요 화려하지만 조금 우울한 노랑이 흩어집니다 작년의 노랑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먹고 사는 것도 한 계절이라서, 제 한 목숨 건사하는데 돈 쓸 일도 별로 없다는 듯, 늙은 관리인이 쉬엄쉬엄 마대에 낙엽을 쓸어 담네요 사랑도 쉽게 오지 않는데 마음의 헛간에라도 쌓아두려는 걸까요

 

 

 

 
 

우남정 시인

2008다시올文學신인상 수상.  2018세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구겨진 것은 공간을 품는다』『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저녁이 오고 있다』 가 있음.

16김포문학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