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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호 Vol.05 - 이소연



  

욕창


이소연

 


 

도마뱀은 고구마줄기 속에서 나왔나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햇볕들

땅속에서 아문 것들이 밖에서 눈을 뜨는 아침이다

 

줄기만 고랑에 심어놓았을 뿐인데

고구마가 쏟아져 나온다

 

호미로 찍힌 곳이 흙으로 채워진다

엄마는 길가에 고구마를 깔아놓고 잘 마르라고 둥글린다

 

햇볕이 만들어 놓은 오늘의 정물화

가지런하게 말라가는 것을 본다

 

초록 요양원 옆 고구마 밭

할머니가 누워 있던 침상 같다

좌우로 몸을 뒤집어주는 일을 하면서 엄마는

맞닿는다는 게 얼마나 지독한 일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맞닿는 입술 같은 걸 떠올리다가

 

링거 같은 줄기는 평평한 곳 어디에나 꽂아두면 잘 자라고

고구마는 흙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하는데

 

포항에서 보내준 고구마는 박스 속에서 곰팡이가 슬어간다

저걸 언제 다 먹을까

 

짧게 사는 것도 복이라는 말한마디 잘라 놓고

달아나는 햇빛 도마뱀

 

 

 

 

 이소연  시인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산문집 『고라니라니』가 있음.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