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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호 Vol.35 - 백인덕



 불원不願, 이 세계

 백인덕





 빈 길 길게 움켜쥔 반사경 뒤
 구식 전봇대와
 은행나무 그늘은 분명한데
 목숨 걸어도
 모르는 건 단 하나도 건너가지 못하는 
 서슬푸른 오후,

 빗소리 두 마디로 꽉 채울 담벼락 따라
 노란 꽃 폈다 지고
 하얀 밤 오고
 하얀 꽃 폈다 지고
 붉은 밤 오고
 붉은 꽃 폈다 지고
 심연深淵의 밝은 밤 이후
 새로 꽃 피운 오후,

 검은 꽃만 가득 담긴 반사경 뒤
 바람 부는 대로 
 꽃의 질감으로 펄럭이는
 세발자전거와 
 입간판을 괸 모래주머니들
 입은 벌렸지만, 이 세계
 모르는 건 단 하나도 건너가지 못하는.







  

 백인덕 시인
 1991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북극권의 어두운 밤』등과 산문집『나는 숨쉰다, 희망한다』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