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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호 Vol.35 - 김효연



 이쑤시개가 슬프지 않다 

 김효연






 바라본다

 맨발 맨엉덩이, 양말목으로 늘어난 맨젖가슴이 
 뭔가 담긴 듯한 배에 닿아 있다
 파묻은 얼굴, 가시덤불이 맨등을 타고 내려가는

 백 년 전이나 이백 년 후에도 드레스는 다른 곳으로 배달되고
 슬픔*은 벗겨진 채 여전히 숨 쉬고 있다

 나는 슬픔 때문에 죽을 일 없는데
 베르테르는 단숨에 갔다
 그렇다고 돌지도 않겠지만
 고흐는 서서히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도끼들이 떼어간 둘째 동생의 콩팥 한 알은 여태 못 찾아오고 
 진통제를 겹겹 붙이고 삼켜도 서랍마다 신음이 고이고
 사방 벽은 못 참겠다는 듯 헛소릴 쏟아낸다

 이승 아닌 저승은 더욱 아닌 병실에서 멀쩡한 생각을
 달력 속에 넣고 있는 엄마의
 보금자리도 깃털로 날아 가버렸다

 슬픔은 나누면 온전한 내 몫이 되지 않는다

 넘치는 그것을 어떻게 소비할까
 흔하고 하찮아서 톡 분지르거나 버려도 하수구가 막히지 않는 
 이쑤시개라면

 식당 밖으로 물고 나와 쑤시고 파는 데 열중하다 미련 없이 던지면
 짓밟힌들, 파묻힌들
 지렁이도 거들떠보지 않는


 *빈센트 반 고흐 작품










  

 김효연 시인
 2006년《시와반시》로 등단. 
 시집『구름의 진보적 성향』『무서운 이순 씨』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