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
  • 신작시
  • HOME > 신작시 > 신작시

2021년 07월호 Vol.01 - 최문자



  그 나무

      

최문자

     


한 번도 내가 아니었던 그 나무

 

그 나무에 있었으나 조금도 그 나무가 아니야 그 나무의 영혼도 쓸쓸함도 눈물도 허밍도 모두 내가 아니야

그 나무를 시작하는 프르스름한 언어일 뿐

 

잎이 아니고 언어라는 것이

왜 이토록 부드러워

나와 다른 꿈

다른 느낌

다르다는 건 숨을 곳이 많은 곳

 

젖은 신발을 신켜주며 잎으로 살라고 했다

젖어있는 것들의 가장자리는 살이 터지던 금속성

 

나는 엊그제 그 나무에서 죽고 싶어 혼났네

하필 당신 앞에서 잎인가 하고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그 나무가 삼킨 새들 그 나무로부터 그 나무를 수식하던 바람

우리는 아주 잠깐씩 눈을 마주칠 뿐 안절부절 목숨이었다가 어느 순간 잃어버린 우울이었다가 마지막으로 뛰어내릴 낭떠러지였다가 그 나무를 흘려보내는 일

 

누구의 잎으로 산다는 건 죽도록 내가 없는 것*

새로운 흙구덩이에 손을 넣는 것

 

안녕 안녕

 

오늘은 새처럼 날아가지 않겠어

무겁게 무겁게 무쇠처럼 떨어지겠어

   얼마나 깊은지 모른는 한층 더 깊는 곳으로

 

  * 최문자 시 <>에서

 

 

 

     

 

최문자  시인

1982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