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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앉은 사람
길상호
그림자를 물 위에 뉘어놓고서
저기 물가에 쉬는 사람
한여름 저수지는 말이 없어서
함께 닫아건 입술에서
희미하게 비린내가 번지는 사람
방향을 바꿀 때마다, 시간은
구름이 되었다가 물고기가 되었다가
담배연기 한 자락 수면에 얹어놓고
아득한 눈길은 무얼 찾고 있는지
물결이 씹다만 버드나무 흰 뼈와
늙은 개처럼 드러누운 햇볕이
잠시 어른대다 사라질 뿐
삭은 손금을 툭툭 부러뜨려
물에게 던져 주고는
담배 한 개비 더 빼 드는 사람
물먹은 그림자가 가라앉아도
애써 눈길을 거두는 사람
길상호 시인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외 3권,
사진에세이 『한 사람을 건너왔다』가 있음.
현대시동인상, 김종삼 시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