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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호 Vol.16 - 노상비


 

 서어나무는 고요하였다

 

 

  

“이 나무들은 무슨 나무야?”
“서어나무.”

영흥도 십리포의 서어나무는 그곳에 살던 선조들이 해풍이 심해서 방풍림으로 심은 나무들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는 300여 그루의 군락지를 이루고 있었다.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서인지 직선으로 자라지 못하고 구불구불 뒤틀렸다. 바람과 거친 날씨를 겪은 험한 모습의 나무들. 그중에 사진 한 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회색빛 나뭇등걸이 근육처럼 꼬였고, 나무 기둥에는 큰 구멍이 뚫렸는데, 그 위의 검은 흉터들이 반창고처럼 보였다. 참 험악한 나무도 있다고 생각을 하며 사진을 바라보았다. 같이 간 친구가 서어나무의 별명이 ‘인내의 나무’라고 알려 주었다.
영흥도의 바닷바람을 가슴으로 방어하고 있는 서어나무의 애처로움이 내 가슴으로  전해졌다. 아마 서어나무는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영흥도를 지켜야 하니까. 겨울에 바닷바람은 얼마나 혹독했을까. 온몸으로 바람을 피하다가 오른쪽으로 굽었으리라. 장마철의 장대비는 또 얼마나 줄기찼을까. 숨을 쉬려고 다시 왼쪽으로 굽었겠지. 그래서 나뭇등걸이 구불구불 비틀렸고, 나무 기둥에 구멍이 뚫린 모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구멍이 뚫린 나무를 자꾸 쳐다보았다. 내 가슴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켜야 할 나의 현실로부터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서어나무처럼 갇힌 존재였다. 
광릉 숲에 왔다. 서어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영흥도 십리포에 군락지가 있고, 그 외에 여러 군데에 서어나무 숲이 있다. 내가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몇 년 전이었다. 사진 전시회를 준비 중인 친구를 쫓아 사진 촬영에 동행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지난주에 찍었다며 영흥도 십리포의 서어나무 군락지 사진을 보여 주었다. 여러 컷의 사진들이었다. 특이하게 나무들이 모두 구불구불했으며, 곧게 뻗은 것이 없었다.
숲은 생명의 보금자리였다. 푸르른 잎을 달고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잎들은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 햇빛을 받으며 힘을 만들어 나무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숲에서 풍기는 이 상큼한 냄새를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숲은 고요하였다. 그곳을 지키는 나무들의 기둥은 우뚝 서 있었으며, 하늘을 가린 푸르른 잎들은 바람이 스칠 때면 들릴 듯 말 듯 살랑이는 소리를 냈다. 나뭇잎들은 내가 가는 길에 녹색의 손들을 마구 흔들었다. 내 마음도 따라서 흔들렸다. 나뭇잎에 붙은 이슬이 두어 방울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깊은 숲에 들어와서야 서어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근육 나무라는 별명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의 몸통을 가진 모습이다. 다부진 근육을 가진 청년의 몸통처럼 힘줄도 튀어나와 보인다. 영흥도 사진 속의 서어나무 첫 인상은 고단한 책임감에 시달리는 못생긴 나무였는데, 광릉 숲의 서어나무는 나무 기둥이 구불구불 꼬여 있고 여전히 구멍이 뚫려 있으나 단단하고 강한 모습이다. 숲 속의 장수(將帥) 같았다.
서어나무는 음수(陰樹)이다. 음수의 나무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를 말한다. 햇볕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소나무와 참나무는 오히려 생존력이 약한 나무들이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번성하는 동안에 서어나무는 그늘에서 오랜 시간 인내하며 목숨을 유지하지만, 그 나무들이 사멸하게 되면 그때부터 빠르게 성장하여 마지막까지 숲을 지킨다. 음수로 가장 낮은 곳에 서식하다가 숲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서어나무가 숲의 장수가 되었던 생명력의 근원은 ‘오래 참음’이었다. 뻥 뚫린 구멍들은 오랜 세월 묵묵히 참았던 훈장인 듯했다. 그늘이라는 음지의 환경을 잘 견딘 것이다.  
서어나무 숲에서 어느 분을 만났다. 그분은 좀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죽은 서어나무를 볼 수 있는데, 서어나무 기둥의 뚫린 구멍 사이에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멸종 위기의 장수하늘소 딱따구리 등 곤충들이 살아가고 있고, 버섯 등도 양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어나무는 죽어서도 숲의 이로움에 자기를 내어주고 더불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숨을 깊이 내쉬어 본다. 온몸에 스며드는 나무의 어루만짐이 느껴졌다. 한 모금이라도 더 서어나무의 생명수를 마시고 싶어서 나무 기둥에 얼굴을 비볐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 마음의 절대 권력자인 아버지. 어머니 품의 따뜻함보다 아버지 가슴의 든든함이 내 팔에 휘감겨 왔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사는 동안 힘들고 지쳤을 때, 아버지를 찾아가곤 했다.
“참는 자가 강한 것이다.”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영흥도 서어나무의 뻥 뚫린 나무 기둥이 내 삶의 상처 자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생명이 잉태되고 있었다. 꽉 껴안았다. 커다란 구멍과 내 가슴이 맞닿았다. 살면서 뚫린 가슴의 상처 속으로 서어나무 구멍의 수액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상처의 구멍이 생명을 품을 수 있다니, 내 가슴에서 파란 새싹이 돋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광릉 숲을 걸어 다녔다. 서어나무 숲은 치유의 숲이었다.

 

 

 

 


 
 
 노상비

 2018년《한국수필》등단. 

 수필집『살굿빛 오후』가 있음.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 한국수필 작가회 이사. 

 숙명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