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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호 Vol.14 - 서숙


 

 관념론의 바다, 초월적 관념과 내재적 개념 사이

 

 

  

  추상화가 어렵다고 한다. 그에 대한 접근 방법에는 여러 경로가 있겠으나 철학적인 기초를 통하면 다소 해법이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학적 관점에서 기본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현대미술에 가까이 다가가면 생각지도 않은 감동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지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전혀 생소했던 세계에 발을 딛고 벅찬 환희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겠는가.

 

플라톤(Plato BC 428?-348)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대표한다. 중세 내내 기독교에서는 플라톤의 초월주의를 받아들여 인간의 참된 지식은 신이 인간에게 빛을 비추어 알게 된다는 아우구스투스(354~430)의 교부철학이 자리를 잡았다. 진리는 현실에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내재주의는 배척을 받다가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스콜라 철학에 힘입어 각광 받기 시작하였다. 아퀴나스는 신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감각적 대상을 실재라고 여기고, 경험과 인간 이성을 통해서 그러한 실재에 도달하려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그러므로 널리 확대된 신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함께 받아들여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한 것은 그의 나이 17세 때의 일이었다. 그는 스승이 타계할 때까지 20여 년 동안 플라톤 밑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형상(形相) 개념에서 제자는 스승의 생각을 따르지 않았다. 형상을 현실 세계를 초월한 곳 어딘가에 있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인 이데아(Idea)로 보았던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형상은 현실에서 경험을 통해 추출해 내는 보편적인 관념이었다. 명칭도 이데아라고 하지 않고 에이도스라고 칭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개체는 형상(eidos)과 질료(hyle)의 결합체다. 형상은 질료보다 우월한 것이긴 하지만 이데아처럼 초월적인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현실의 개개의 사물에 내재하는 것이었다. 플라톤에게 있어 보편이란 초 감성계에서 연역적으로 주어지는 관념적 실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집대성한 형이상학에 의하면 보편은 현실의 개별적 사태들에서 취합한 개념에 의해 귀납적으로 성립된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플라톤 못지않게 세계의 보편자를 추구한 철학자였다. 두 사람 모두 물질보다 관념을 우월하게 여기면서 진리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연구한 관념론자다. 그러나 같은 관념론이라도 플라톤의 존재론은 초월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은 내재주의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라파엘로의 벽화 <아테나 학당>에서 플라톤의 손가락은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지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가 더 현실적이며 논리적으로 여겨지나 편협한 측면이 있고 플라톤의 사고는 지극히 추상적이긴 하지만 폭이 더 넓다고 할 수 있다.

기하학 등의 수학적인 대상들로부터 형이상학으로 나아가려 했던 플라톤은 존재를 관념적 경향으로 파악하려 했다. 반면, 자연철학, 특히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초월적인 것보다는 현세적인 것에 더 주목하였으며, 따라서 실재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관념적인 것으로 파악해 나가려는 경향이 짙었다.

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본격적인 고대 미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Plotinus 205-270)에 의해서이다. 모두 관념론 철학을 구사했던 인물들이었지만 미와 예술에 대해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개진했다. 이상주의적이고 관념론적인 플라톤은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미를 미의 원형으로 삼아서 미의 이데아를 향한 상승의 방법으로서 에로스(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영혼의 열망)를 제시하였다. 현세적이고 경험론적인 면이 강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관념적인 미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미보다는 그런 미의 실제적인 측면, 즉 예술(테크네)에 더 많은 미학적 관심을 할애했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도 예술이란 현실을 모델로 한 제작 행위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보편이란 현실의 구체적인 개별자 안에 내재하는 것이었으므로 현실에 진리가 담지되어 있다. 따라서 예술은 현실을 잘만 묘사해내면 진리를 전달해주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플라톤과 대비된다. 플라톤에게 있어 예술이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예술가가 비합리적인 창조 동인에 의해 현실을 뛰어넘어 초월 세계를 경험해야만 하는 것(비 모방 개념)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런 작업이 불필요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이 진리를 전달하는 방법은 바로 미메시스(Mimesis)였다. 그는 자연학에서 예술은 자연을 미메시스한다고 주장하였고 시학에서는 비극작품을 논하면서 자신의 미메시스 이론을 전개하였다. 요컨대 플라톤의 관념에는 예술 작품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없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은 광기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는 훗날의 신고전주의자들이 말하는 모방 또는 재현이라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의 미메시스는 보편(전형, 표준, 본질)을 말하는데 이는 각각의 종()의 가장 이상적인 것, 즉 어떤 개체에 형상이 완벽하게 구현된 완전체(Entelekeia)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이상이라는 점에서 지금 현실에는 존재하지 아니하는, 어디까지나 관념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의 목적은 개연성 있는 허구나 은유(다름에서 닮음을 찾기) 등으로 특수를 통해 보편을 모방함으로써 그 보편적 진리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술 전반)는 역사보다 위대하다라고 언명하였다.

 

최초의 미학자라고 볼 수 있는 플로티노스는 존재론적 미학을 주창하며 이라고 하는 미의 새로운 인자를 내세움으로써 곧바로 이어진 중세 미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전한 불은 에너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빛을 의미하기도 한다. 빛은 사물을 보게 만드는 필수조건이다. ‘본다는 것에 의하여 그리스의 철학자 플로티누스는 빛과 미를 관련지었으며 나아가 상상력은 내면의 빛이라고 했다. 정신의 빛은 표상을 펼치며 그를 통한 유추(類推)를 통해 추상적 사유 능력을 가능하게 하니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

플로티노스 철학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적 신비성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상반된 시각을 절충한 데 따른 결과이다.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으로부터 초월적 실체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질료와 형상의 결합 즉, ‘개체 안에 존재하는 보편개념을 물려받아 유출(emanation)과 테오리아(Theoria, 미적관조)라고 하는 자신의 방법론으로 둘을 통합한 것이다. 형상의 존재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랐고 그 형상의 초월적 가치는 플라톤을 따른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추상주의의 대표적인 두 갈래를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다분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기원을 이룬다. 추상의 세계는 관념론으로부터 시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플라톤 미학은 비합리적 창조동인에 의한 영감 광기 상상력을 요구한다. 이는 낭만주의에 닿아있는데 관조에 의한 정신의 능동성으로 볼 수 있다. 인간 정신이 우주적 이미지와 통하므로 그 세계에 대한 것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끝내 알 수가 없다. 칸딘스키의 추상화 작업에 그 정신이 녹아있다.

반면에 예술은 자연을 미메시스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미학은 고전주의와 사실주의로 이어지는 이러한 정신의 수동성을 몬드리안의 추상화에서 유추할 수 있다.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현실이 수직 수평으로 환원되는 미메시스의 세계다. 그러므로 모델과의 유사성이 인식된다. 상징하는 이미지는 단번에 알기는 쉽지 않지만 결국은 알 수 있게 되어 의미 파악과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플라톤의 초월적 관념이 구현된 칸딘스키의 추상화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내재적 개념을 구현한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모두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이라는 관념론은 이후의 실재론과 유물론, 물질과 정신은 하나라는 일원론이 다양하게 변주된 현대철학이 출현할 때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 그러나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는 화이트헤드의 언명처럼 존재론과 관념론은 우리의 의식에 각인되어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만의 이데아를 찾아 헤매는데 그것이 철학하는, 지혜를 사랑하는(philosophia) 자들이 명맥을 이어가는 소이연이다.

 

 

 




서 숙

2001년《계간수필천료, 2017년에세이포레평론 등단.

수필집 푸른방』 『마음이여정착하지 마라』 『내 마음에 그림 하나』 등 다수.

한국산문문학상일신수필문학상구름카페문학상 수상.

선수필주간 수필미학편집장 계간수필편집주간 역임. 현재 수필미학작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