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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Vol.10 - 권대근


 

 삶의 높이

 

 

 

  

  스웨덴의 청소년환경운동가 툰베리는 탁월한 연설을 통해서 미래 세대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그녀는 ‘지구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으며 지구가 파괴되는 현상이 우리 앞에 일어나고 있고, 숲은 우리를 불태우고, 가뭄은 우리를 굶주리게 하고, 강은 우리를 익사시키고, 기업은 우리를 질식시키니, 이제 기후변화를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외쳤다.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오른 것을 보면, 그녀의 영향력이 막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가 기후협약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거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툰베리가 뜻밖의 신선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작다고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걸 몸소 실천해 보였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사명인 우리 문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자식들 앞에서, 어른들이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툰베리는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가 미래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 것인가요’ 라며 어른들과 권력자들에게 되묻기도 한다. 그녀는 2018년 8월 20일 스웨덴 의회 건물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섬으로써 미래의 목소리를 내는 강렬한 이미지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초등학교 4학년때 선생님으로부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듣고 자신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미래를 위한 금요일 집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어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성사시켜 내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기후는 바뀌길 원하지 않는다며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바뀌어야 함을 설파했다. 그녀는 경제성장 같은 인기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기 없는 것을 두려워한다면서 ‘기후정의’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위기를 위기라고 인정하지 않고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진정한 힘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언명했다. 기후변화는 세대간의 문제로 부모가 회피해서 생긴 문제를 자식에게 떠맡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쳐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녀는 또 기후와 생태의 위기에서 권력자들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비판하며, 유엔 연설을 하러 가면서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요트를 타고 갔다.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녀는 여론이 권력자들을 압박하면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 이 대전환의 시대, 지구가 중병을 앓고 재앙을 토해내고 있는 이때, 우리 문학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성인은 말로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가. 문학인이 인류의 교사가 된다면, 지구의 중병을 좀 더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문인은 필봉을 휘둘러야 되고, 문학을 위한 물음은 공동체를 향한 물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 사회의 높이를 가늠할 때는 그 사회에서 문화나 철학이나 예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혹은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보기도 한다. 이것들의 가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회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시선이 이미 이것들이 제공하는 높이를 수용할 정도에 도달해 있다고 최진석 교수는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라는 책에서 말한 바 있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시대적 조건과 국내의 정치지형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문화를 핵심적 가치로 설정한 점은 가슴에 깊이 새길 만한 내용이다. 경제력이나 국방력도 문화력에서 나온다. 생명, 생태, 자유, 인권, 평화와 같은 덕목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가 바로 문화적이고 예술적이며 철학적인 사회다. 지금까지는 생태적 상상력이나 합리성을 바탕으로 지구를 살리는 운동에 매진했다면, 이제는 좀더 구체적인 개념으로 기후정의를 추구해야 할 것 같다. 이를테면, ‘우리가 날씨다’라는 구호다. 이제 ‘날씨’ ‘기후’는 위에 언급된 다섯 가지 덕목에 앞서는 키워드로, 대전환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각했다.   
   언어는 곧 우리의 무기다. 언어와 의식으로 무장하면 세상은 바뀔까. 미국 템플대에서 공공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있는 제이슨 델 간디오 교수는 ‘혁명은 가능하며,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 저술가이자 활동가이다. 그는 2000년 봄 우연히 저녁 뉴스를 보다가 워싱턴에서 사람들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에 항의하는 장면에 붙들렸다. 그 장면을 보고 그는 세상을 더 좋게 바꾸려면 세계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뒤부터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소극적인 참여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선택했다. 우리 문인도 이제 펜을 들고, 행동을 때가 된 것 같다. 
   필자 역시 ‘Change your word, change your world.'를 외치는 사람이다. 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언어의 힘‘을 예비 석박사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문학언어생태학자로서 ’언어는 파워다‘라는 생각으로 수사나 언어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채득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며, 그것이 가능하려면 활동가와 조직가의 ’수사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넘어 ‘위드-코로나 시대’가 왔다. AI의 발전으로 로봇시대의 도래가 점쳐지기도 한다. 가상현실에 접속해서 노는 청소년들, 로봇과 노는 사람, 심지어는 가족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로봇과 결혼도 하고, 로봇과 운우지정도 나누는 시대를 상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인구는 줄고, 비혼주의가 늘면서 인간의 자리에 로봇과 복제인간이 설지도 모른다. 영국의 작가 메리 셀리가 쓴 공상과학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처럼 실수로 만들어진 ‘괴물’ 같은 복제인간들이 나와 거리를 활보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환경운동가 툰베리가 성공한 것은 그녀의 의지와 진정성도 중요하게 작동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성공 요인은 그녀의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언술과 수사학이었다고 본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저마다 벗어나고 싶은 삶의 굴레가 있다. 누구나 밟고 싶은 생의 유토피아가 있다. 과연 그 삶의 높이를 키우는 신의 한 수는 무엇일까? 이제 우리 작가들은 답해야 하리라.








 권대근 

 수필가, 문학평론가, 번역가

1988년 월간《동양문학》등단 후《경북신문》《중앙일보》신춘문예 평론 및 수필 당선

사)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회 회장,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 위원장

현)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