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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Vol.7 - 심규호


 

 타이베이 소곡小曲

 

   심규호

 

 

  

  비가 올 줄 알았다. 아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펀(九份)은 역시 비가, 때로는 장대비가 오는 날이 어울린다. 비안개에 가득한 바다가 바라보이는 아메이차러우(阿妹茶樓)에서 우롱차 향내가 좋았다. 비오는 타이베이,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1983년 처음 타이베이에 갔을 때 느낌은 ‘칙칙함’이었다. 푸른 상록의 나라에서 칙칙함이라니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 때는 젊었고, 지금은 늙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변화의 숨소리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타이베이를 들르면 가장 먼저 책방으로 달려갔다. 충칭난루(重慶南路) 크고 작은 책방 백여 개가 몰려 있는 곳. 하지만 지금은 책방 대신 여관이 자리 잡거나 셔터가 내려진 상점 위에 옛 간판만 덩그러나 걸려 있었다. 그나마 연명하고 있는 곳을 들렀으나 딱히 살 책이 없었다. 그 때는 넘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다만 대상이 바뀌었을 뿐. 
  시먼딩(西門町)은 널리 알려진 지명이지만, 공식 이름이 아니다. 초(町)라는 행정구역은 타이베이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명동을 메이지초(明治町)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외성인外省人보다 차라리 일본인이 낫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의아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50년이나 식민통치를 받았으면서도. 그래서 난 그곳이 싫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시먼역 6번 출구를 나가 건널목 앞에 서서 남색이 빠진 무지개 색깔이 칠해진 횡단보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위에 TAIBEI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 결혼을 허락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나중 일이다. 아, 그렇구나. 그 표시였구나. 그런데 왜 사람들이 그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있었을까? 어느 불로거의 글을 읽었다. “나의 인생샷! 시먼딩 ‘리우하오차이훙(6號彩虹, 여섯 개 무지개)’” 앳된 여성이었다. 
  그런데 뭐지? 칙칙하고, 냄새나고, 더럽고, 야한 타이베이는 어디로 갔나? 빈랑(檳榔) 파는 비키니 아가씨는? 아무 데나 내뱉던 그 붉은 타액의 흔적들은? 중정기념관에 모인 농회(農會) 소속 농민들이 외치던 함성은? 굉음을 발하며 치달리던 오토바이, 건널목도 아닌데 멋대로 찻길을 건너던 행인들은?  허기진 채로 길거리를 배회하던 비루먹은 개들은?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렇게 예쁜 무지개 꽃이 타이베이 중심가에 활짝 핀 것일까?    중정기념관 앞 길게 뻗은 중정대로가 민주대도民主大道로 바뀌고 그 앞에 있는 패루牌樓에는 ‘자유광장’이란 현판이 걸렸으며, 널따란 광장에는 ‘민주광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그곳은 장제스를 기념하는 곳이다. 그가 통치하던 시대는 계엄시대(1949~1987년)였고, 2만여 명의 정치범이 녹도(綠島) 감옥으로 쫓겨나던 시절이며, 시민들 입에서 “개가 가니 돼지가 왔다(狗去猪來)”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던 때였다. 그리고 아직 국민당이 정식으로 타이완으로 철수하기 이전인 1947년 ‘얼얼바(2.28)’ 사건이 터졌다. 상하이에 주둔하던 국민당 제21군이 지룽基隆으로 상륙했고, 무차별 총격으로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공식적인 사망자는 2만 8천여 명) 
  아름다운 섬이란 뜻에서 포르투갈 선원이 명명한 포르모사(Formosa)라고 칭해지기도 하는 이곳은 스페인, 네덜란드를 거쳐 정성공이 이끄는 한인들이 대거 이주하다가 근대에 들어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후에는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이 지배했다. 그 사이에 원주민은 산으로 올라가고, 본성인은 외세의 억압에 신음했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가 사망하고 최초의 직선제 총통으로 본성인 출신 리덩후이李登輝가 선출된 후였다. 1991년 비상계엄령이 폐지되고, 2.28사건이 50주년이 되는 해인 1997년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2.28 평화공원 설치, 보상금 지급이 이어졌다. 도도한 물결이다. 
  하지만 어찌 처음부터 그러했겠는가? 분명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샘물이 있었을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작은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파도가 되어 사람을 바꾸고, 환경을 정리하며, 마침내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 아닐까? 타이베이 정치대학의 주(朱)교수는 총통부 앞 10차선 대로의 이름이 제서오(介壽)였었다고 말했다. 장제스의 장수를 비는 도로! 씩 웃었다. 그리고 바꾼 명칭이 타이완의 원주민 가운데 한 종족의 이름에서 따온 카이다거란대로(凱達格蘭大道)라는 말을 듣고 웃음을 거두었다.
  징메이 인권 문화공원(景美人權文化園區)에 가서 그 샘물이 어떻게 도도한 물결이 되었는지, 그리고 다시 어디로 흐르는지 확인했다. 함께 동행한 차이(蔡) 선생은 그곳 군사재판정에서 재판을 받고 그곳 구치소에 감금되었던 인물이다. 죄목은 간첩. 그는 자신이 갇혔던 감방을 구경시켜주었다. 그는 미소를 띠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공원 내에서 「우크라이나 여성 인권 서사」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구경하고, 관련 기자회견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도도한 물결이 어디로, 어떻게 흐르는지 보았다. 
  4박5일의 타이베이 여행이 끝나고 나는 책 대신 찻잎과 진먼(金門)고량주를 잔뜩 사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아직 찻잎 봉지를 뜯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행여 향기 날아갈까 싶어서. 그리고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고량주는 역시 함께 마셔야 맛있다.  







  
 심규호 

 1999년《계간 수필》로 등단. 수필집 부운재』가 있음.

 전 제주산업정보대학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교수, 제주중국학회 회장, (사)제주문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