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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Vol.6 - 구영주


 

 운명을 믿으세요?

 

   구영주

 

 

  

 그는 지쳐 보였다. 안 그래도 마른 얼굴이 광대 밑으로는 더 홀쭉했고 피부는 물기 없이 거칠었다. 청바지에 낡은 티셔츠를 입고 오리털 잠바를 대충 걸친 모습은 어딘가를 숨 가쁘게 달려온 사람처럼 보였다. 초라한 그의 외양과는 달리 안경 너머로 형형하게 빛나던 그의 눈빛만은 또렷했다. 세상에서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이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날 밤 내게 달려온 것은 맞다. 그것도 꽤 먼 길을. 그는 계속 자기 삶을 향해 아니 어쩌면 자기 삶이 아닌 곳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밥 먹었어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밥 먹으러 가요.”

 나는 숨 가쁘게 달려온 그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겨울이었고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뜨거운 복국을 앞에 두고 술 한 병을 시켰다. 그의 머리 위에서 감귤 향이 날 것 같은 그러나 실제로는 낙엽색에 가까운 형광등이 그의 이마를 지나 콧등 아래로 어른어른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콧등 아래로 떨어지는 입술은 언제 봐도 견고한 조각처럼 적당한 그러나 꽃잎의 한쪽 면처럼 부드러운 곡선이었다. 

 그는 소주가 오자 각자의 잔에 따르더니 빈속에 냉큼 한 잔을 들이켰다. 소리는 묵음으로 처리되었고 대신 미간을 찌푸리며 얕은 인상을 쓰더니 다시 한 잔을 또 따랐다. 나는 그런 그를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복국이 도착하기 전에 그는 그렇게 두 잔을 더 마셨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복국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는지 아니면 그가 입을 열어 말을 하기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당도하기를 바랐다. 지금의 침묵을 깨 줄 어떤 것이. 

 술이 몇 잔 들어가니 그는 아까보다 한결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뜨거운 식당 내부의 열기 때문인지 몇 잔 마신 술 때문인지 그의 얼굴이 천천히 달아올랐다. 그제서야 눈을 들어 나의 안부를 물었다. 딱히 안부랄 것도 없었다. 그사이 짧은 문자들을 몇 번 주고받았지만 만나면 늘 서랍 속에 오래 담아둔 물건을 쏟아내듯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막 일을 끝내고 내가 있는 곳까지 한 시간을 달려온 터였다. 자신의 꿈과 지금 현실의 어려움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가야 할 길과 가고 싶은 길에 대해서 그는 두서없이 말했다. 가끔은 실체 없는 언어들이 주는 아득함에 시달렸다.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담아두고 사는 그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했다. 그때의 우리는, 적어도 나는, 오래 묵혀둔 그래서 이 지상에는 없을 것 같은 그의 언어들을 열심히 듣기 위해 준비된 사람처럼 굴었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의 입술을 통과해 나온 한마디 한마디를 빗질해 한 곳에 정성껏 모아 담듯 나는 그의 모든 언어를 마음에 담았다. 

 그가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따뜻한 음식과 고단함을 달래줄 몇 잔의 술과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는 나의 인내심 때문이었으리라. 적어도 사랑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 역시 이제 막 서른이 되었고 살고 싶던 삶의 꿈이 빠르게 좌절되어 가슴속에서는 어떤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매 순간 화형에 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자기연민은 내게 화력 좋은 땔감이었다. 그런 내게 그의 모습은 어쩌면 나보다 더 처지가 안 돼 보이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의 껍질 속에 아주 단단히 웅크리고 있었고 여전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으나 방향을 알지 못하는 어린 새처럼 날기를 주춤거렸다. 그는 나에게 왔지만 나에게 온 것이 아니었다. 

 늦은 밤, 일을 끝내고 밤길을 달려 내게 오는 일은 몇 번 더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연락이 끊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랬는데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꿈꾸던 삶을 보기 좋게 실패하고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게 증명하는 삶이었다. 보여줘야 하는 삶이었다. 

 사실 그때의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시절을 홀로 견디며 지내고 있던 터였다. 아주 가끔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만 털어놓고 사라지는 나보다 어린 사내가 탐탁지는 않았으나 너무 오래 내 안에 갇혀 있던 당시의 나로서는 그의 방문이 주는 위안이 있었다. 그를 만나면 자주 심각해졌지만 그래도 술을 한잔할 수 있었고 내가 아닌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생기는 온기와 몸속의 세포 하나까지도 모두 다른 타인이 주는 생경함은 나의 오래된 고독과 결계를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서로가 지나치게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지나치게 고립되어 있는 청춘들이었다. 그 모습은 어쩌면 나의 모습이기도 했고 그는 그것을 알았기에 나를 찾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는 지금 나와 한집에 산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수년이 지난 후 결혼했다. 일이 끝나면 늦은 밤길을 달려 나를 찾아온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과, 언제든 찾아오는 그에게 음식과 술을 사 먹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함께 산 지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뒤늦게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지금은 서로를 가끔 놀리곤 한다.

 “우리 그때 뭐가 그리 심각했을까?” 
 “아주 세상 고민은 혼자 다 했지.”
 “그때 내가 사준 술값이 얼마인 줄 알아?”
 “치사하게 그걸 아직…”

 그와 나는 뜨거운 청춘의 한 시절을 연인이라는 이름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오래 만나왔다. 각자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나중 일이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각자의 외로운 숙명을 부둥켜안느라 혼자 우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잠깐 한 번씩 만났던 그 시간들이 아주 천천히 쌓이면서 서로 ‘너’라는 존재를 발견했다. 

 결혼하고 우리는 당시 전공의 월급 210만 원을 받으며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매일 싸우며 살았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났고 세상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부모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누군가 운명을 말할 때면 나는 늘 어떤 거부감이 들었다. 운명이라니. 삶은 스스로 노력하고 개척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나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가끔 떠올린다. 

 며칠 전 무슨 일 때문인지 사소한 신경전이 있었고 궁지에 몰린 나는 비겁하게 그의 약점을 쥐고 매서운 말을 날렸다. 다음날 나란히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나는 갑자기 전날의 일이 떠올랐고 성체를 모시러 나가기 직전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는 흠칫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젠 미안했어.”

 내가 작게 속삭이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성체를 모시고 내 앞에 서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순간, 내가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는 어떤 것에 온전히 갇혀 버렸음을 알았다. 짧은 순간 전율이 일었다. 그것은 내가 자주 거부했던 ‘운명’이라는 단어였다. 

 사는 동안 우리 역시 다른 부부들처럼 자주 싸웠고 서로 몇 번의 이별을 생각했고 또다시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매번 관계의 반복이 주는 지겨움과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심정으로 살아왔지만 한 번도 그것을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성체를 모신 후 내 앞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불현듯 이 사람과 이렇게 영원히 싸우며 영원히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날 처음으로 ‘운명’이라는 나를 단단하게 움켜쥔 단어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16년 전 나를 찾아 밤길을 달려온 그의 숨찬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낡은 외양 너머 형형하게 빛나던 눈동자를 그때 이미 내가 사랑해 버렸다는 것을. 따뜻하게 몸이 녹자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던 그의 수줍은 미소를 그때 이미 내가 사랑해 버렸다는 것을. 그것이 운명이었다는 것을. 내가 사랑해야 할 운명이 지금 내 앞에 서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구영주 

 프리랜서 라이터. 서평가.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 칼럼니스트. 

 온라인 무비톡 <구작가의 영화에세이>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