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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 Vol.3 - 박금아


 

 나팔꽃의 장례식

 

   박금아

 

 

  

 동짓달 어둑새벽에 녀석을 지켜본 적이 있다. 가을꽃 다 진 때, 베란다 차가운 흙분에 담겨 보랏빛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이 첫아이를 출산하던 막냇동생을 떠올리게 했다.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곁에 쪼그리고 앉아서 “힘을 줘, 조금만, 조금만 더!”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두 시간을 넘겨서야 겨우 꽃문이 열렸다. 눈곱만한 꽃잎 끄트머리를 물고서 피어난 꽃받침에 푸른 멍 자국이 선명했다. 엉뚱하게도 갓난쟁이 조카의 엉덩이에 있던 몽고점을 떠올렸다. 필시, 고달픈 삶을 숙명으로 살아낼 예언 같은 것이었으리. 

 마지막 꽃송이였다. 세찬 바람 속에서도 등줄기를 곧게 세우고서 한나절 꽃을 피워 올리더니 다음날부턴 감감소식이었다. 생산을 끝낸 녀석은 지상에서의 일을 마친 듯했다. 세상을 놓아버린 듯, 한 모금의 물도 거부한 채 죽음을 앞둔 어미처럼 하루하루 몸을 줄여갔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잎을 구부리곤 하던 엄살도 없었다.

 임종 직전의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자식들에게 일생을 내어주고도 늙어 짐 될까 걱정이더니 노환이 깊어서는 곡기를 끊어버렸다. 강한 정신력 때문이라고들 했지만, 몸은 할머니를 더 오래 기억했던 모양이다. 초롱했던 정신을 떠나보낸 후에는 놓아준 영양제마저 거부하며 한 방울의 수액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겨울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나팔꽃이 외할머니를 닮았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단정히 쪽진 비녀 아래로 곧은 등이 떠오른다. 어찌나 꼿꼿하던지 할머니가 입은 적삼은 사람의 어깨가 아니라 장롱 속 철사 옷걸이에 걸려 있는 듯했다. 소들이 하루아침에 외양간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을 때도, 살뜰히 지켜낸 집채와 전답을 사라호 태풍에 떠내려 보내던 날에도 할머니는 어깨를 굽히지 않았다.

 외할머니로서는 개가인 셈이었다. 결혼을 늦게 해야 한다는 점쟁이 말을 믿고 당시의 처녀 나이로는 과년한 스물한 살에 시집을 갔지만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이듬해 상처(喪妻)한 조씨 집안의 막내아들에게 재취 자리로 왔다고 했다. 첫 부인을 신혼에 병으로 떠나보낸 외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맞아들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떠났다. 화훼와 과수 농사 기술을 배우느라 일 년에 두세 번 고향에 다녀갈 때를 빼고는 일본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사이 할머니는 네 명의 자식을 낳아 기르며 외할아버지가 마련해두고 간 과수원을 일구었다.

 혼인하고 십삼 년째 되던 해에 6‧25가 일어났다. 일본에서 돌아와 집에 머물던 외할아버지는 전쟁을 피해 집을 나섰다가 오지 않았다. 이북으로 갔다는 둥, 인민군이 되었다는 둥 온갖 소문이 마을을 들쑤셨다. 할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할머니는 갓난쟁이 아들을 업고 지서에 가서 밤새워 조사받기 십수 번, 오촌 당숙의 꼬임에 빠져 보도연맹에 가입한 일은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청상의 몸으로 사시사철 불어오는 비바람을 견뎌내며 길러낸 자식들은 평생토록 근심가마리였다. 할머니는 모든 우환을 당신 탓으로 여기며 더 줄 것이 없음을 한탄했다.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이 존재한다지만 나는 또 하나의 성(性)으로 모성(母性)을 생각한다. 이 염색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손에게 송두리째 내어주는 유전자적 특성을 본질로 한다. 나의 어머니가 그랬고, 외할머니가 그랬다. 살아오는 동안에 만난 다른 어미들의 삶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얼추 비슷했다.

 몸피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 있었을까. 이제 나팔꽃은 허공에 뿌리를 내렸다. 스스로 의지가지가 되어 붙잡을 것 하나 없는 자리에 자궁 같은 씨앗집을 내걸고 애면글면 그러모은 것들로 목숨을 여물고 있다. 볕 한 자락과 비바람 한 줄기, 달빛 한 조각까지도 보듬어 생명으로 길러내니 어떤 건축가가 지은 집이 그보다 탄탄할까. 텅 빈 공중에 뿌리내리기로 치면 어미들도 그랬다. 

 하늘에 내걸린 씨앗집들이 사리(舍利) 같았다. 불가에서는 사리를 오랫동안 수행한 공덕의 결과물로 일컫는다. 어미가 행한 공덕보다 더 큰 공덕이 있을까. 배 속에서 자란 것들은 제 어미의 생명을 담보로 태어나 어미의 골육으로 몸을 키웠으니 말이다. 어미들은 목숨마저 내어주는 거룩한 수행의 삶을 살다가 때가 되면 껍데기가 된 자신을 거두어 무변광대한 허공 속으로 홀연히 떠나가는 슬픈 족속이 아니던가. 모든 자식은 어미가 생전에 남긴 사리일지도 모른다. 

 갑사(甲紗) 너울로 엮은 씨앗집이 빈 거푸집처럼 나부꼈다. 제 속 수분을 다 빼낸 나팔꽃이 외할머니의 유해처럼 뻣뻣했다. 체관이나 물관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물 한 모금 삼키지 않고 천정만 보고 누워 지내다가 영원 속으로 떠난 할머니처럼, 나팔꽃은 선 채로 허공에 들었다.

 베란다 창틀에 걸어 꽃대를 지지하던 무명실을 끊었다. 한 생애를 받치던 등줄기가 “바삭!” 하며 바스러져 내렸다. 순간, 나팔꽃나무는 온데간데없고 한 줌 검불만이 남았다. 

 적멸(寂滅)이었다.   

   

 

 

 

 

 

 박금아

 2015년《매일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가 익는 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