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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호 Vol.20 - 성민선


 

 굴뚝과 땔감 사이–곡돌사신曲突徙薪

 

 

 

여럿이 하는 여행이 안심이 되는 것은 그 안에 반드시 스승도 있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서이다. 다섯 명이 중국 쓰촨(四川) 성의 성도 청두(成都)를 지난 5월말 4박 5일로 방문했는데 내가 제일 먼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청두의 천부(天府)국제공항에 도착한 일요일 밤에는 비가 왔고 다음 날은 기온이 30도가 넘었다. 첫 일정으로 두보(杜甫)의 초당(草堂)을 방문한 다음 무후사(武侯祠)를 찾았다. 시내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인구 2천 만 명의 대 도시 청두는 18개의 지하철 노선이 잘 놓여 있고 교통이 매우 편리하였다. 리더가 지도를 가지고 이끄는 대로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걷기도 하고 택시도 타면서 목적지를 찾아 갔다. 

두보(712~770)의 초당은 당 나라 장안(長安)사람 두보가 안사(安史)의 난을 피해 청두에 와서 4년간 살았던 초가집이다. 청두는 천혜의 기름진 땅이었다. 자연의 조건이 좋아서 자원과 산물이 풍성했고 먹을 것을 구하기도 쉬웠다. 난리 통에 잡혀 있다가 청두로 탈출해 온 두보는 강이 가까운 곳에 초당 한 칸을 짓고 살면서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하고 시대의 현실과 사람들의 고난을 직시한 현실주의 시 240여 수를 지었다. 그는 다시 당 현종에게 돌아가서 낮은 직급의 관리를 지냈다. 훗날 세상 사람들은 두보를 시성(詩聖) 또는 시사(詩史)라 부른다. 

나무들과 꽃들로 잘 꾸며진 아름답고 아늑한 두보 공원에서는 산책을 겸하여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박물관, 시인의 조각상, 연못, 그리고 정원에 잘 들어선 사원 등 고대 건축물이 청두를 찾는 참배객들에게 고즈넉한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두보의 초당에서 마음 편한 감상을 했다면 가까운 거리이지만 택시를 타고 도착한 다음 코스인 무후사(武侯祠)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는 웬 지 처음부터 숨이 찼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비, 제갈량 등 군신(君臣)이 함께 모셔진 중국 유일의 사당이라선지 관람객들이 많았다. 사당 안에서 관람객들을 맞는 영웅호걸들은 마치 지금도 살아있는 인물인 것처럼 뜨겁고도 진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 낮의 열기가 뜨거우니 몸에선 땀이 났고 마침 음료수 자판기가 고장 나서 목도 말랐다. 사당 안을 자세히 보려면 끝도 없기에 그곳에 왔다 갔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우리는 다음 곳으로 떠났다.  

청양궁(靑羊宮)으로 가는 길이다. 청양궁은 원래 도교 사원이던 것이 당 황제가 피난 시 그곳을 행궁으로 썼다 하여 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당 안에  푸른 양이 상징처럼 세워져 있다. 양 한 마리에 12지 동물의 몸이 한 부분씩 모두 부조되어 있다. 도교의 어떤 비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양을 만지면 병이 없어지고 어떤 문제도 해결되며 심지어 아이도 가질 수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관광 명소가 된 곳이다. 

걸어갈 정도의 가까운 길이라 하여 우리는 그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탈이 났다. 청양궁을 지척에 두고 운신이 힘들었다. 가드가 인도와 차도 사이에 쳐져 있어서 택시를 잡기에도 마땅치 치 않은 지점이었다. 더 이상 걷다가는 어지럼증에 맞닥트릴 것 같았고 거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은 위험을 느꼈다. 임계점이란 것이 이런 것 아닐까 싶었다. 더 이상 참으면 큰일 난다!고 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만 들렸다. 나는 옆의 동료들에게 내가 위험하다고 알렸다. 더는 못 가겠다고. 하지만 동료들도 무슨 수가 있겠는가. 앞서 가던 리더가 내게로 되돌아와서 목적지에 다 왔다며 나를 몇 발짝이라도 더 걷게 하였다. 바로 눈앞에 음수대가 보이고 벤치가 보였다. 공원이었다. 아, 살았다! 싶었다.    

리더와 다른 한 사람은 가까운 청양궁으로 갔고, 두 사람이 청양궁 관람을 포기하고 나와 같이 벤치에 앉아서 나를 돌보아주었다. 수건을 꺼내 물에 적셔다 주었고 마실 물을 떠다 주었다. 당분 보충하라고 단 것을 내주었다. 나는 물에 적신 수건들로 열심히 머리 얼굴 목 팔의 열을 식혔다. 다행히 메스꺼움이나 어지럼증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험한 시간은 넘어갔다는 안도의 마음이 들면서 나를 보살펴준 동료들에게 그제야 고맙단 말을 건넸다. 

우리 앞 벤치에 중국 여성이 한 사람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중국 가정에서는 가족 중에 더위를 먹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바로 병원에 간다고 하였다. 집에서 응급으로 할 수 있는 뭐가 없느냐는 뜻으로 물었던 건데 답이 병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우리 동료 가운데 한 사람, 젊었을 때 열사의 나라 중동에 가서 일했었다는 이 선생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일사병으로 어지럽고 쓰러지면 병원에 가야 할 뿐 아니라 금방 회복이 되지 않지요.”  

아이쿠, 그 다음 일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한 낮에 체육을 하거나 조회를 할 때 핏기 없는 얼굴 하얀 아이가 픽 쓰러지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기후 온난화가 일상화 되어  지구촌에 폭염 뉴스가 다반사이고 온열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매일 이어지는 상황이다. 죽음까지도 초래하는 무서운 열사병! 

이거 막을 법이 무엇일까. 이 선생은 모든 힘든 일의 가장 좋은 대비책은 사후 대처가 아니라 현명한 예방이라면서 고사 하나를 들려주었다.

곡돌사신(曲突徙薪). 굽을 곡, 갑자기 돌(굴뚝의 의미도 있음), 옮길 사, 섶 신이다. 예방이 최고라는 뜻으로, ‘굴뚝의 구멍을 반듯하게 뚫지 않고 아궁이 근처의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화근을 미리 방지한다.’는 말이다. 유비무환이다. 그 유래는 굴뚝의 구멍이 반듯하게 뚫려 있고 곁에는 땔나무가 잔득 쌓여 있는 집을 보고 한 지혜로운 나그네가 주인에게 다가가 ‘굴뚝은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땔 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시오.’ 했으나 주인은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결과는 어떠했겠는가. 불이 나자 머리를 끄슬려가며 그 불을 끈 사람은 칭찬을 받았으나 예방책을 말한 사람은 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니 예방을 하찮게 여긴다는 뜻이 담겨 있는, 좀은 씁쓰름한 사자성어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에서 중국어를 함께 배우던 동학들이 청두 대 교수로 부임한 중국인 장(張) 선생을 찾아 명색이 ‘수학여행’이라며 쓰촨 청두를 여행 중이다.  여성은 나 혼자이며 내가 최고령이다. 혹시 내가 뒤처지지 않도록 한 사람이 내 뒤에서 나를 따르며 이동하는 대열이다.   

나의 역할은 민폐가 없도록 리더를 잘 따라 순조로운 팀 여행이 되도록 하는 것과 혹시라도 멤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 조정자로 나서는 일이다. 갈등 조정이란, 걷느냐 택시를 타느냐, 어디를 가고 어디를 안 갈 것이냐 등 차이가 나는 의견이 있을 때 멤버들이 합의에 이르는 것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다. 혹은 술을 좋아하는 멤버가 과해지기 전에 스톱! 을 외치는 정도이다. 멤버 중에 나의 대학 후배가 한 사람 있어서 멤버들이 나를 선배님하고 불렀는데 여행 중 어느덧 누님으로 바뀌었고 나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우리는 택시를 타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감사의 뜻으로 일행에게 찻집에서 차를 대접하였다. 중국에서 마시는 차 맛을 보기 위함도 있지만 ‘누님’도 되었고 더위를 먹을 뻔했다가 도움을 받아 잘 넘긴 것이 고마워서 한 턱 내는 것도 있었다. 

장 선생은 우리들에게 대학 식당에서 학교 음식도 맛보게 해주었고 부부가 중국의 4대 요리라는 쓰촨의 고급 음식을 두 번이나 대접해주었다. 성이 이(易) 씨인 장 선생의 부군 이(易) 박사를 우리는 이서방이라고 불렀다.    

쓰촨은 다시 가 봐야 할 곳이다. 볼거리들이 정말 많고 그 중에서도 중국에서 제일 오랜 고대 문명으로 밝혀진 삼성퇴(三星堆)가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중국의 하-은(상) 시대에 중원(황화강 유역)이 아닌 변방 쓰촨 지역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색적인 선진 청동기 문명이 청두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광한(廣漢)시 지역에서 발굴됨으로써 중국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는 형국이다. 

애석하게도 이번엔 삼성퇴를 바로 눈앞에 두고 관람을 하지 못했다.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를 급한 마음에 택시를 대절해 갔지만 예약을 미리 못하고 가는 바람에 허탕을 찬 것이다.  

이번 여행 팀과 다시 쓰촨에 한 번 더 가고 싶은데 글쎄, 내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땐 이번에 배운 곡돌사신, 즉 유비무환의 가르침에 유념하여 정말 멋진 쓰촨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성민선

 수필집 『징검다리꽃』『섬세한 보릿가루처럼』『 날마다 전성기』가 있음.

 한국산문작가협회 이사, 철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