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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호 Vol.14 - 조 정

 

 

 

신작시 2근작시 3편시인의 말


신작시 2편ㅣ

  

 고창고성

 

 

 그해 여름의 서랍 열면 먼지가 낳은 당나귀와 수레 덜컹이는 소리와 아이들이 쏟아졌다 한 아이가 안고 달려오는 닭은 벼슬이 짧고 단단했다        


 처마 얕은 양고기 식당 간유리에 비치는 유구遺構의 어깨, 저 흙더미가 우나? 

  

 서랍을 닫아도 고운 수실 요령 단 나귀는 탕,썽,장,징,더, 빠르게 달리고 수레가 몹시 흔들리고 먼지 너울 속 아이들 함성 하늘을 치고 쏟아져‘니’라는 마을에 스스로 깨달음이라 불리는 샘물이 솟았다  


 나선무늬 진 물 맑았으나    

 사무침을 씻지는 못 했다

      

 서북 투루판에서 불어온 황사가 체부동 모퉁이 편의점 앞에 뽀얀 날 서랍을 빠져나온 아이들이 와그르르 웃으며 지나갔다 바람 거슬러‘니’로 가지 못한 건 내 몸뿐







 너븐숭이 펜션

 


 바다와 대척점에 앉았다

 벽시계의 초침은 보폭 일정하게 행군 중이다 


 제 존재가 스스로 섬뜩한 유리컵의 눈이 멀었다 

 사념 없는 물에 녹아      

 혀를 

 베는 

 아, 꽃 없이 살아갈 날들   


 창밖 가로등이 목젖에 묻은 지문 끌어올려 바다 쪽으로 카악카악 뱉는다  

 해마다 사월을 부축하느라 발목 가늘어진 강아지풀 휘이며 슬리퍼 한 짝 끌고 달리는 바람 소리 검은 파도 소리가 부딪쳐 저희끼리만 끝내  잊지 못하는 기억을 공중에 담았다 쏟았다 담았다 쏟았다 나라도반성을한다밤마다나라도반성을한다밤마다나라도반성을한다밤마다


 내 짧은 여행의 거처가 

 죽은 어린 것들 눌러둔 돌무더기 앞에 있었다   

   


  

근작시 3편ㅣ

 

 시신기증


 

 어머니를 해부학교실 냉동고에 두고 왔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왔다 


 머지않은 곳마다

 신호등은 그 눈이 선지적으로 붉었다 

 날이 뜨거웠다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대학 앞 버즘나무들이 투르크족처럼 푸르고 굳세었다

 많은 자동차와 간판들 사이로 사람들이 오르내렸다 

 가로 세로 하늘로 걸쳐진 사다리

 천사거나 야곱 

 출렁거리는 허리춤에 매달려

 어머니는 영사기 리모컨의 꺼짐 버튼을 누르는 중이었다 

 중풍에 무너진 오른 팔을 늘어뜨린 채

 상영되던 어머니

 하늘은 완전히 비었고 아무 것도 아니었다


 웨딩 리본과 풍선을 펄럭이며 흰 무개차가 스쳐 지나갔다

 깔깔깔

 빈 관 끌리는 소리도 무사히 따라오는지 근심하며 

 집에 왔다

 

 


 

 

그 새의 혀
                      

 


 그 새는 장돌뱅이의 주인이다 

 어스름의 이마를 깎아 던진 표창이 덜미에 꽂히며 파장파장 

 하루를 떨지 그새  


 파란만장의 뒤꿈치, 사무침을 통제하는 짐짝, 흰 사발에 담긴 혼서지가 흔들렸다 

                                                                              

 가다 댓돌에 앉았다

 멈춘 자리가 절이다

 사슴이 들보에서 그네를 타고 가릉빈가가 서까래 사이 날며 생황을 불었다 

 나무나무 가릉빈가여 꽃 핀 문살에 골몰이 스미지 못 하게 하라    


 수레는 가벼운 적이 없었다 

 마른 향초를 묶거나 옥사 비단을 싣거나 바퀴 아래 달빛이 출렁이거나 

 쉴 만하면 부서지고 멈출만하면 깨졌다 

 울음 하나에 장 하나 

 그 새는 길의 구음이었다


 터질 듯 터지지 않아 마수걸이 쪼는 맛이 뒷패를 당겨오는 낌새   

         

 찻잔 시울에 입술을 대면 뜨거운 차가 그를 마셨다 

 바람 거세고 차일 날아가는 후생의 횡격막에 연두연두  

 녹나무 새순이 돋았다  


 

 

 

 

 

 측간을 위하여 

 -산황산



                   

 진수 할머니네 측간 문에는 가운데 맞춤으로 정성스레 ‘측간’이라 써있네

 그 앞 작은 꽃밭에 

 칠월이면 나리꽃 세 송이 청초하네 


 그 꽃 보러

 산황동에 가네 

 나리꽃 살짝 보고 오거나 녹슨 펌프 있던 마당 기웃거리며     

 할머니, 할머니  

 불러보네


 나리꽃도 내 목소리 빌어 할머니를 부르네  

 거동이 어려워 

 측간에 못 오시는 할머니를 부르네 


 측간은 골프장 예정지 경계 

 공사 중장비가 밀고 내려오면 맥없이 무너진다네    

 내 동무들과 나는 

 진수 할머니네 측간 지키려고 오래 오래 싸우는 중이라네  



 

 

 

 

시인의 말ㅣ


 무해한 매혹을 꿈꾸며

 

 

 스웨덴 화학자 셀레는 수많은 자연 원소를 발견했고 다수가 상품화되었다. 1782년 이후 그가 발견한 원소로 만든 비소 안료는 유럽 어린이들의 장난감에 에메랄드그린으로 칠해진 후 수많은 어린이들이 까닭 모르게 죽었다. 이 매혹적인 빛깔은 세인트 헬레나섬 나폴레옹의 숙소 벽에도 칠해졌고 나폴레옹은 전신이 독소에 유린당해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곳의 하인들도 같은 증세로 고통을 당했다. 이를 만들어낸 셀레 역시 전신에 고름이 잡히고 관절에 물이 차고 마비되어 죽었다.

 인간의 타고난 죄성 때문인지, 자본주의의 독성 때문인지 사람들이 망가지는 처참한 소식들이 갈수록 참담하다. 치명적인 독소가 꼼꼼하게 칠해진 시스템 속을 살고 있는 모두가 너나없이 불안하다. 한편 참혹에 무디어져 간다.  

이때 시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시인에게 무엇을 할 능력이 있는지 가끔 생각한다. 

이 무용한 시 쓰기가 염치없고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해한 매혹을 꿈꾼다.   


 




 

조정 시인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그라시재라,  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이 있음. 

2011년 거창평화인권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