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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호 Vol.09 - 김완하


김완하 시인

신작시 2, 근작시 3편, 시인의 산문


신작시 2편ㅣ

  

소금이 온다


 

 

뻐꾹새 소리에 귀가 머는 봄

 

마을 사람들은 매일 바다로 나가

 

소금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흰 파도의 눈부신 포말이

 

천수만 갯벌을 따라 젖어오고

 

바람은 파도를 일구어 고랑을 냈다

 

소금이 오기를 기다리며

 

깊은 해안의 벼랑을 따라 걷다

 

달을 안고 돌아온 날은

 

당산마루 숲에 송화 가루 번진다

 

마을 사람들이 찍고 간 발자국마다

 

흰 별이 가득히 쏟아졌다

 


 

그림자 숲


           

   그 숲속에는 큰 그림자 하나 살았다 그는 숲의 마음을 잘 읽어 눈빛으로 숲을 보듬었다 봄이면 먼저 깨어나 길을 열고 가을엔 낙엽을 쓸어 하늘을 틔웠다 눈 내리는 날은 고즈넉한 길로 발자국 남기지 않고 고요히 걸어갔다 그는 언제나 온 마음으로 살았기에 느리게 보이는 것은 그림자일 뿐, 그의 생각과 마음은 누구보다 먼저 가 닿았다 봄날 피어난 어린잎은 그림자의 마음씨 가을의 물든 잎은 생각의 빛깔이었다 그때 바람이 걸어와 숲을 맑게 쓸고 갔다 그는 발자국 없이 모든 숲을 걸어갔다 갈참나무 한 그루 품어 숲 전체를 끌어안았다 바람소리는 그림자가 숲을 비질하는 소리 봄에 깨어난 어린 새는 그림자의 미소였다 나뭇잎 질 때면 길 쓰는 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텅 빈 숲에 눈 내려 밝은 아침이 열릴 때 그림자는 발자국 남기며 성큼성큼 숲길 걸어갔다 사람들은 발자국을 보지 못했다 발자국은 그들 가슴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근작시 3편ㅣ

 

벼랑의 꿈
        

                   

   벼랑을 타고 넘어 기어오르지 않는 꿈 어디 있을까. 가파른 바지랑대에라도 기대어. 아니 허공의 급소를 말아 쥐고서라도. 그래 공중으로 쏘아 올리는 화살처럼. 폭포처럼 타오르고 싶다고. 그건 너와 내가 다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꿈의 두레박 길어 올리기 위해. 너와 나의 내면에 더 깊은 저수지를 채우기 위해서. 나의 영토 작은 왕국이라도 건설하기 위해서지. 꽃은 어둠 밭에 뿌리 묻고 질러와 그 어둠 깨지는 순간부터 시들기 시작하는 것. 이 세상 피어난 꽃들은 다 절벽을 향해 투신하여 태어난 목숨. 별빛 넘어 밤의 숨결 빨아들이며 꽃잎의 때깔 곱게 여미인 뒤. 어둠을 깨우고 이내 목을 지우고 마는 꽃. 단 한번 새벽을 열어젖히면 그만이지. 한낮 햇살에 추레한 내 어깨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 더 이상 세상 빛에는 미련 갖지 않으려고. 오늘 아침도 우리 창가에는 수북 수북이 꽃잎이 떨어지고. 나팔꽃 지친 어깨를 추스르며 서둘러 떠난다. 다시 허공 속으로 길을 후벼 판다.

 

 

 

 

 


안성장날
         

                   

함박으로 퍼붓던 눈발 잠시 그친 사이
발목 푹푹 빠지며 장 골목으로 걸어간다
상점 간판 위로 쌓인 눈덩이 피해
미닫이 창문을 드르륵 밀고 들어서면
유리창마다 서린 김이 뿌옇게 흐려 있다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 뜨거운 컵 손으로 감싸고
김 솟아오르는 오뎅 국물 후후 불어가며
따끈한 정종 한잔씩 들이킨다
그쳤던 눈발 다시 쏟아지면
옛 장터 떠돌던 사내들 너스레 우렁우렁 살아나고
남사당패 꽹과리 징 소리도 눈발 속에 쏟아진다
외줄 타던 바우덕이 외침도 돌아와
우세두세 몰려선 장꾼들 한가운데로
무동 타기 접시돌리기로 흥을 돋운다
눈발 휘날려 창틀을 휘감기 시작한다
불콰한 얼굴에 얼큰함 안고 돌아오는 길
골목 끝에 오동나무 가지는 잔뜩 등짐을 지고
눈발 골목으로 붐비는 쇠 바람도 차갑지 않았다

 

 

 

 

 

 

숲으로 들다
         

                   

   조붓한 오솔길 걸어 비탈 올라가 하늘 올려다본다 한없이 깊은 침묵과 고요로 힘껏 빨아올리는 공중 그 절대 높이에 어떤 미동도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빛으로 고여 있다 훤칠한 미루나무 가지 한편에 구름 기대 있다 하늘의 새파란 빛 눈부심으로 내면 깊이 호흡 끌어당긴다 좌우 둘러 비탈 주변 백양나무 자작나무 화살나무 어깨 맞대고 서로 늠름히 서 있다 그들 두 팔 쭉쭉 뻗어 올리며 짙어가는 머리채 초록으로 물들고 있다 오월의 지상과 천상의 이 완벽한 틈 그 사이로 우리 큰 문 밀고 들어선다.

 

 


시인의 산문ㅣ


시와 함께 넘어온 고갯길


1

   인간의 상상력의 바탕에는 물질이 존재하고 그 물질의 4대 원소를 물, 불, 공기, 흙으로 규정한 것은 가스통 바슐라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 그가 보낸 유년기의 공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년기의 지리적 여건은 그의 정서와 세계관의 형성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구축되는 것이 문학작품인 까닭에 한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공간적 의미는 유년기의 지역적 배경과 연관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지금은 안성시 공도(孔道)읍으로 승격되었으나, 예전에는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마정리(馬井里) 71번지였다. 우리 마을은 국도 변에 제법 너른 들녘을 앞에 두고 뒤로는 작은 산을 지고 있었다. 왼편으로는 80여 미터의 냇가로 한천을 옆으로 끼고 1킬로미터 거리에 차령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곳이다. 그곳은 산과 들 그리고 냇가 등 풍부한 자연이 어우러져 있다. 그러므로 내 상상력의 바탕은 내가 자란 자연 환경이 절대적으로 지배한다고 할 수 있다.
   안성은 경기도의 남단으로 충남과 인접해 있기에 충청도 사투리가 다소 배어 있다. 안성 장은 조선시대는 전국에서 3대 장의 위상을 차지할 만큼 융성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어느 정도 지역 텃세가 세고, 상업적 분위기에서 형성된 셈법이 빠르다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살펴보면 안성의 지세는 다소 폐쇄적인 것으로 그다지 썩 좋게 평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변의 형세는 임꺽정의 수천 명 군사가 잠복할 만큼 깊은 산세가 펼쳐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유년기 이후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곳을 떠나 생활해 왔기에 안성의 지역적 의미가 나의 시에 어찌 자리 잡고 있는지 확연하게 알기는 쉽지 않다. 대학시절 이후 본격적인 시의 습작기는 충청권과 우리나라 여러 곳을 다니며 시를 창작하였기에 나의 시에는 다양한 지리적 공간들이 등장하고 있다.
   안성은 박두진, 조병화, 정진규, 임홍재, 한광구, 김유신 등 시인들이 태어난 곳이다. 평소에도 안성의 지역적 의미가 그분들의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고민해 보지만 딱히 선명하게 잡히는 것은 없다. 지역적 의미가 사투리나 토속적 의미로 드러나는 점에서 안성의 특성은 그리 선명하지 않다. 물론 위에 거론한 분들의 작품 활동이 주로 서울 등 외지에서 이루어진 까닭도 있을 줄 안다. 다만 3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임홍재 시인의 시에는 안성의 지역적 의미라 할까 하는 면들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임홍재 시인이 남긴 한권의 시전집 『청보리의 노래』는 안성의 성격을 짙게 반영하고 있다.
   내 시에도 안성의 지역적 의미라 할까 하는 점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첫 시집의 길과 마을의 정서를 찾을 수 있다. 나의 시에는 마을의 정서가 나타나 있다. 그것은 첫 시집 제목 『길은 마을에 닿는다』에서도 알 수 있다. 마을은 바로 어린 시절 내가 자란 고향의 정서가 함축되어 있는 곳이다. 그곳은 마을공동체적 삶이 펼쳐지던 곳으로 따뜻하고 아름답게, 어느 면에서는 풍요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길은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면면들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의 궁극적인 도달점을 마을로 형상화한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다시 그러한 삶의 공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의 문제이지 물적 토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우리 삶의 외관이 바뀐다 해도 그러한 정신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 시에서 강한 지역적 의미를 찾기는 그리 쉽지 않은 듯하다. 그것은 토속적 세계를 통한 시적 소재나 다양한 민속적 세계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지역어의 맛깔스러움이 흥건하게 묻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자란 안성 지역으로 농촌의 삶에서 협력하여 살아가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두레정신이 올곧게 살아 있던 곳으로서의 마을이 형상화되고 있다. 앞으로 나는 내 시에 좀더 고향의 마을과 두레정신을 담아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


   나의 유년을 따라가면 거기에 산과 들로 이어지는 많은 길과 함께 홀로 거닐던 어린 날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아무도 없는 집 대문 밑으로 기어들어가 책가방을 던지고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마치고도 한동안 놀아줄 사람이 없어 혼자 지내야 했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나의 기다림은 활력으로 살아나 길가로 나와 선다.
   그때 비포장도로를 트럭 한 대가 털털거리면서 달려간다. 뽀얗게 피어오른 먼지가 사방을 덮고 한참 지나서야 먼지는 가라앉는다. 지붕이나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에 그 먼지가 내려앉아 하얀 막을 덮씌우기도 하였다.
   누나와 형은 안성에 있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 아직 오지 않았다. 안성읍 쪽으로 목을 빼고 기다리면 저 멀리 굽은 한길을 따라서 갈래머리 딴 누나들이 하얀 칼라를 빛내며 줄지어 걸어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맞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바로 그때 한 대의 트럭이 다시 도로를 흔들고 가면서 누나들의 그 흰 칼라를 먼지 속에 가두어 버린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피고 맑은 하늘과 흰 구름의 전형적인 가을날이었다. 한참이나 목을 빼고 기다린 후에 누나들은 먼지를 털며 마을로 걸어오고 있었다.
   때 누나들의 모습이 잠시 사라지던 순간은 나에게 어떤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기도 하였다. 또한 안성 장으로 물건을 사러 가셨던 어머니가 돌아오는 것도 그 순간으로 이어지곤 하였다. 그렇게 길은 다가와 마을에 닿고 또 마을을 가로 질러 다른 곳으로 이어져 가기도 하였다.
내 어린 날 기억의 중심에는 우물이 하나 오롯이 떠오른다. 그것은 모성의 원형심상과 같은 것으로 어머니와 겹쳐지며 이웃해 집 가까운 콩밭이 떠오르고 어머니의 노동이 연상된다. 어머니가 가꾸시던 텃밭은 대지의 신으로 확장되어 나의 고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 상상력의 우물엔 언제나 싱싱한 기억들이 가득 차오른다. 내 유년의 어느 구석에도 어머니의 모성은 강력한 자장(磁場)으로 내 상상력과 감수성을 감싸 안는다.
   우리 집에는 장독대와 꽃밭 옆에 아주 작은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우물은 아침저녁으로 달려가 얼굴도 씻고, 한여름 땡볕에 퍼 올려 숨을 몰아쉬며 들이키면 가슴을 서늘하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내 유년의 우물가에 항상 서 계신다. 우물을 중심으로 작은 꽃밭, 채송화, 봉숭아. 빨랫돌, 흰 고무신, 별 등의 이미지가 풍부하게 연결되고 있다. 내 유년의 한가운데 있는 우물, 그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은 서서히 주변으로 흘러 내 잠든 유년의 기억을 하나씩 깨워주곤 한다.
   그날도 어머니는 집 뒤 과수원의 콩밭에 김을 매시고, 저녁 늦게야 돌아오셨다. 땅거미가 집안 구석구석을 어둠으로 채우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닦아 놓으신 고무신은 빨랫돌 위에서 하얀 빛을 쏟아냈다. 내가 두레박으로 길어 드린 물로 어머니가 하루의 피로를 씻으실 때, 나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저 우물 밑바닥에서 별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황토 꽃밭의 봉숭아가 꽃잎을 사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 기억들은 꾸밈없이 한 편의 시로 드러났다.

 

어머니는 집 가까운 콩밭에 김을 매시고 저녁이 되어서야 맨발로 호미와 고무신을 들고 돌아오셨지요 우물가 빨랫돌 위에 고무신을 닦아 놓으시고, 하루의 피로를 씻으시던 저녁, 땅거미가 내릴수록 더욱 희게 빛을 발하던 어머니의 고무신, 어머니 의 땀 밴 하루가 곱게 저물면 이제 막, 우물 안에는 솔방울만한 별들이 쏟아지고 갓 피어난 복숭아도 살포시 꽃잎을 사리는 것이었지요

 

지금 우물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싱싱한 꿈 길어 올릴 두레박줄 내릴 곳 없는 데, 이제는 그곳에 서보아도 뒷산 솔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나의 저 어린 시절 어머니의 흰 고무신이 빛나던 저녁, 우리 집 우물에서 솟아나던 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별들의 고향」 전문

 

   그곳에서 어머니는 때 묻은 삶을 하얗게 헹구어 빨랫돌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러나 이제 그 우물은 메워지고 흔적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요즘도 내 상상력과 감수성이 고갈되면 고향집에 달려가 제일 먼저 뒤꼍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우물이 있던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어머니의 빨랫돌과 흰 고무신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내 메마른 상상력의 우물에도 새로운 물이 가득 차오르는 것이다.


3


   나의 시는 1980년대 고개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내 ‘고개의 시적 상상력’에는 시의 토대가 마련된 1980년대의 배경이 짙게 깔려 있다. 1980년 광주에서 강력하게 시작된 민주화의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우리는 5.18을 맞이하게 된다. 그날 전국적으로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대학가에 휴교령이 내려지며 대학정문에는 계엄군들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대학생들은 집에서 리포트를 쓰며 지내야 하는 숨 가쁜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주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큰 것들이었다.
   나는 짐을 싸들고 산으로 들어가야 했다. 금산의 진악산에 있는 보광사라는 절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와있는 고시 준비생 등 대학생 네 명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엄격하게 일과를 정해놓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시를 쓰면서 스스로를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야 나를 지탱할 수 있었다. 밤이면 산 아래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금산읍의 반짝이는 불빛들이 나를 유혹했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금족령을 내리고 그곳에서 나 자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나를 철저히 고립 속에 가둠으로써 나를 추스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이면 금산읍으로 내려가 분주하게 흘러가는 장꾼들 틈에 끼어 서 있곤 하였다. 따가운 여름 장터에 붐비는 사람들 속에 나를 부려 놓고 한정없이 장터를 훑는 시간으로 나를 잊곤 하였다. 그러다가 파장이 되면 쓸쓸함을 안고 다시 터벅터벅 2시간 반이나 걸어 산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 산으로 오르는 비탈길은 너무 힘겹고 숨찬 것이어서 어둠 속을 걸으면서 흠뻑 땀을 흘리고 나서야 어느 정도 내 가슴속 열기들이 사그러들고는 하였다. 그 어둠 속으로 돌아오면서 올려다보면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그 별들은 어둠 속에서 ‘나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고 외치는 듯했다. 다음 시는 그 당시에 씌어진 것이다.

 

음력 칠월, 보름 장은 유난히 더웠다 / 삼방(蔘房) 골목으로 / 흘러가는 장꾼들 / 지난 장 밑도는 시세 다툼 / 바람 한 줄기 돌지 않는다 // 웃음과 한숨 뒤엉켜 흐를 때 / 봉황천 물은 조심조심 기어 내리고 / 우시장에선, / 소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쇠전다리 건너 찢어진 포장 / 튀밥 기계를 안고 있는 사내는 / 몇 줌 옥수수 거짓처럼 부풀리며 / 화덕의 불 목숨처럼 가꾼다 // 시든 햇살도 쓰러지고 / 진안행 막차가 / 먼지를 퍼붓고 떠난 후 / 어스름 장터, // 씀바귀 줄기 흰 물 맺히듯 / 돋아나는 별 / 무리져 내리는 별빛만 / 쉬지 않고 풀리는 샛강에 / 몸을 담근다              

-「금산장날」 전문

 

   그 날 그렇게 금산장의 막차가 먼지를 퍼붓고 떠나면 나는 파장의 장터에 외롭게 홀로 남아 또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씩 망연자실하게 서 있곤 하였다. 그 밤 막차는 장꾼들을 가득히 싣고 어둠 속을 헤치며 갔다. 아마 그 버스는 어느 마을 앞의 고갯길을 털털거리면서 힘겹게 올라갔을 것이다. 제 몸뚱이 안에는 막걸리 냄새 풀풀 풍기는 시골 사람들을 가득히 싣고서. 그리고 한참 지나 어느 마을 동구 밖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쏟아놓곤 하였을 것이다.

 

안개 속 낮게 기어온 / 진안행 막차가 산모롱이로 사라진다 / 깊은 어둠 구렁에 갇히는 발목, / 금산장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 허기진 하루 / 꾸러미에 묶여 돌아온다 // 촘촘한 발길에 끌려 / 초행길 어둠 뚫고 가면 / 산은 더 가까이 허리를 세운다 / 목에 감기는 안개 걷으며 / 골라 딛는 길 가운데 괴어 있는 빗물은 / 밤에도 깊이 잠들지 않는다 // 이따금 그어대는 성냥불 안으로 / 급히 얼굴을 디밀었다 사라지는 나무들 / 하루의 곤함도 잠겨 가고 / 잠시 침묵이 긋는 사이, / 오리나무숲은 설친 잠을 추스른다 // 어둠에 익어 드러나는 길 / 홀로 떨어져 가면 / 삼밭에 널린 묵은 짚 썩어가는 위로 / 숨 가쁜 안개 무리져 몰린다 // 보리밭 머리에서 일행은 흩어지고 / 수군거리며 도랑을 건너고 / 황토고개 올라서면 / 폭포처럼 쏟아지는 빛줄기, / 탱자나무 울타리 적셔 가면 / 마을 가득히 살아나는 숨결                                          

-「밤길」 전문

 

   어느 날은 금산군 진산면 만악리에 있는 친구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바로 그날도 금산장날이었다. 나 스스로 장꾼은 아니었지만 장꾼들과 함께 털털거리는 막차에 몸을 싣고 가면서 무언가 한낮에 땀을 흘린 그들과 동류의식을 느껴 현실의 중압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버스 안에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장꾼들이 설렘으로 일렁이기도 했다. 또한 그들이 가족을 위해 사 가지고 돌아가는 생선의 비린내가 풍기기도 하였다.
그날 밤에 친구를 찾아가며 힘겹게 오르던 황토고개,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마을사람들은 그 가쁜 어둠 속에서도 익숙한 걸음으로 나를 앞서 가고 있었다. 나는 점차 그 어둠에 적응해가며 모퉁이를 돌고 숲을 지나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때 친구는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 밤에도 나는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비탈을 따라 고개를 오르면 거기 마을이 있고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 불빛과 만나는 순간의 희열을 안고 나는 그 시대의 변두리에 머물면서 한 여름의 뜨거웠던 열기를 밀어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시와 함께 그 시대의 고개를 넘고 있었던 것이다.

 

4


   나의 20대와 내 시의 바탕이 마련되고 다져진 1980년대는 그 시대를 보낸 젊은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의식을 부여해 주었다. 그 시대는 우리에게 문학의 역할과 기능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였다. 그것은 광주에서 분출한 민주화의 열기와 신군부 간의 갈등이 폭발하는 광주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암담한 사회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을 피해 내가 금산의 한 산사로 옮겨 지냈던 시간. 그것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대단히 소극적인 자세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갑갑한 시대상황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는 숨 가쁜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고개를 넘는 벅찬 순간에도 나는 결코 문학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문학을 통해서 그 고개의 힘겨운 순간들을 하나씩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뻐꾹새 한 마리가 / 쓰러진 산을 일으켜 깨울 때가 있다 / 억수장마에 검게 타버린 솔숲 / 둥치 부러진 오리목, / 칡덩굴 황토에 쓸리고 / 계곡 물 바위에 뒤엉킬 때 // 산길 끊겨 오가는 이 하나 없는 / 저 가파른 비탈길 쓰러지며 넘어와 / 온 산을 휘감았다 풀고 / 풀었다 다시 휘감는 뻐꾹새 울음  // 낭자하게 파헤쳐진 산의 심장에 / 생피를 토해 내며 / 한 마리 젖은 뻐꾹새가 / 무너진 산을 추슬러 / 바로 세울 때가 있다 // 그 울음소리에 / 달맞이 꽃잎이 파르르 떨고 / 드러난 풀뿌리 흙내 맡을 때 / 소나무 가지에 한 점 뻐꾹새는 / 산의 심장에 자신을 묻는다
- 「뻐꾹새 한 마리 산을 깨울 때」 전문

 

   여름날 장맛비가 그치고 물소리가 산과 계곡을 휘감을 때는 산비탈이 무너져 시뻘건 황토가 속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칡덩굴은 쓸려 내리고 소나무 숲은 물에 취해 더 짙은 빛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잠시 후 물소리가 조금 잦아들고 나면 서둘러 뻐꾹새가 울었다. 뻐국새는 그 울음소리로 자진해 있는 산을 추스르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황토 흙의 비탈과 파헤쳐진 밭을 서서히 깨워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산은 다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산은 자신을 가다듬어 또 하나의 산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그 날의 뻐꾹새는 바로 그 시대를 깨우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뻐꾹새는 끝내 산의 심장에 자신을 묻었다. 내 가슴 속에 누워 있는 그날의 고개에는 아직도 뜨겁게 뻐꾹새가 울고 있다. 그 울음소리는 가파른 고갯길을 힘겹게 넘어와서 나를 더 뜨겁게 일깨우면서 시인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여름 장마에 녹초가 된 산의 황토고개를 쓰러지며 넘어와 온산을 휘감았다 풀고, 풀었다가 다시 휘감으며 쓰러진 산을 일으켜 깨우던 뻐꾹새의 울음소리처럼 이 세상을 새롭게 일으켜 깨우는 시를 쓰고 싶었다.
   당시에 씌어진 나의 시에는 그 시대에 대한 비판이나 분노, 고통이 직접적으로 표출되어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이미지를 통한 형상화로 나의 내면 심정이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당시 나의 삶은 힘겨운 고개를 따라 올라가는 벅찬 과정이었다. 당시의 ‘밤길’은 자연의 어둠이지만 고통스러운 그 시대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내 시는 당시 나의 내면을 비유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시대의 문학은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동체의식이나 유대감 그리고 상생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렇다. 그때 20대의 내 문학은 힘겨운 비탈고개를 넘어가는 나의 발길에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김완하(金完河)

 

1987년 『문학사상』 으로 등단.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네가 밟고 가는 바다』『허공이 키우는 나무』『절정』『집 우물』, 시선집 『어둠만이 빛을 지킨다』『꽃과 상징』, 저서 『한국 현대시의 지평과 심층』『한국 현대시와 시정신』『신동엽의 시와 삶』『김완하의 시 속의 시 읽기』 1~6권을 냈다. 소월시우수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충남시협 본상 등을 받았다. 현재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