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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호 Vol.02 - 김기택


 

김기택 시인

 신작시 2편, 근작시 3편, 시론      

신작시 2

 

폭주

 

 

한순간 바스러져 형체를 없애버릴 것 같은 속도가 있다 

속도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에 대한 분노를  

감정적으로 터뜨리는 굉음이 있다 

찡그린 얼굴이 내다보는 창문을 거칠게 흔드는 진동이 있다 

직선을 긋는 칼날을 보다가 선명하게 갈라지는 뇌가 있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 같은 몸이 

속도에 납작하게 붙어있다 

폭발음이 설사하지 않도록 항문을 꽉 닫고 있을 것이다 

터져 사방으로 튈 것 같은 뇌수를 

컴컴한 두개골이 단단히 밀봉하고 있을 것이다 

가속도가 붙어 점점 얇아지는 두개골을  

헬멧이 제 아귀에 두껍게 감싸 쥐고 있을 것이다

      

가속도 붙은 몸무게가 팔랑거리고 몸통이 투명해지고 

오토바이가 물렁물렁해지는데도 

굉음은 여전히 길바닥에 돋는 소름을 긁어 

행인들의 귓구멍을 들쑤시고 미간을 우그러뜨리고 있다 

속도의 꼬리를 지그재그 흔들고 있다 

창틀을 꽉 붙들고 있는 유리창을 박살 내고 있다 

경첩이 빠지도록 문을 잡아당기고 있다 

 

주변의 고막들을 다 찢어버린 굉음이 

미세먼지 하늘에다 촘촘하게 바늘구멍을 내고 있다

 

    

 

5인실

 


아까부터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한평생이 가고 있다. 

삐끗하면 어딘가 부러질 것 같은 허리를 일으키는 일에 

삶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언젠가는 꼿꼿한 몸통에 숨겨져 있던 발이 나와  

떨리는 슬리퍼를 신을 것이다. 

하면 된다는 일념이  

링거 거치대를 밀며 코앞의 머나먼 화장실로 갈 것이다.

      

누군가 먼저 들어간 화장실에서는 

오줌 소리는 들리지 않고 끙끙거리는 소리만 끈질기다.

      

건너편 침대에서는 요도에 관을 넣어 

피 섞인 오줌을 빼내는 투명 플라스틱 통이 있다 

벌건 오줌이 반쯤 차 있다. 

그 옆에는 일생일대의 힘을 쥐어짜 숨 쉬는 침대. 

또 그 옆에는 기계로 목구멍 찰거머리 가래를 빼는 침대. 

모터 소리에 맞추어 내지르는 지루한 비명. 

그 소음 속에서도 

깰 힘이 없어 할 수 없이 잠들어 있는 침대.

      

갑자기 유리창이 흔들리고 커튼이 펄럭이더니 

병실 밖 어디선가 고성과 욕설과 악다구니가 들려온다. 

아까운 건강이 함부로 낭비되는 그 소리를 

번쩍 눈을 뜬 열 개의 귀가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링거 맞듯이 엿듣고 있다.

 

      


■ 근작시 3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힘

     

 

다리가 있는지도 모르고 뛰는 강아지 

눈이 있는지도 모르고 쳐다보는 강아지 

꼬리가 있는지도 모르고 흔드는 강아지 

 

아직 이빨이 되지 않은 이빨은 순하고 

아직 발톱이 되지 않은 발톱은 간지럽다

      

머리를 쓰다듬으니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멀리서 나무들도 덩달아 가지를 흔든다 

머리에서 나무로 이어진 긴 등뼈가 보일 것 같다

      

뛰고 흔들고 달려드는 힘들이 솟아나  

산에는 나무들이 가득하다 

발톱 달린 뿌리들이 땅속에서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와 꼬리 사이 머리와 산 강 하늘 사이 

등뼈들이 돌아다니는 모든 길이  

내 다리를 타고 올라와 꼬리뼈를 흔든다

      

하늘이 와서 강아지 눈을 닦아준다 

나뭇잎 바람이 와서 표정을 간질여준다 

햇살이 와서 발바닥을 드높이 올려준다

 

      

앉아 있는 사람

    

 

온몸이 엉덩이로 몰려와 의자 속으로 들어간다. 의자에도 심장이 뛰는 몸무게가 생긴다. 

의자는 제 몸을 움푹하게 파서 엉덩이를 품는다. 제 속에 엉덩이를 심는다.

      

머리통 무게는 엉덩이에서 배분되어 두 다리와 네 다리로 뻗어가고 있다. 

의자는 몸무게를 안고 축 늘어진 팔과 등받이에 기댄 등뼈와 지친 숨소리를 흡수하고 있다.

      

엉덩이가 의자 속으로 다 스며들어서 두 다리는 일어나고 싶지 않다. 의자다리처럼 일어날 수가 없다. 

의자는 반쯤 엉덩이가 되어서 엉덩이를 놓아주고 싶지 않다. 놓아주면 엉덩이가 뜯어질 것 같다.

      

발바닥은 감촉을 잃고 눈으로 올라가 창밖이 되고 뇌로 올라가 지붕 밖 생각이 되어 있다. 

엉덩이는 의자를 구두처럼 신고 마룻바닥을 뚫고 내려가 땅을 밟고 있다.

      

엉덩이는 뿌리를 내리고 가슴과 머리는 의자를 뚫고 돋아나 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핥을 때

   

 

입에서 팔이 나온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연약한 떨림을 덮는 손이 나온다.

맘껏 뛰노는 벌판을

체온으로 품는 가슴이 나온다.


혀가 목구멍을 찾아내

살아있다고 우는 울음을 핥는다.

혀가 눈을 찾아내

첫 세상을 보는 호기심을 핥는다.

혀가 다리를 찾아내

땅을 딛고 설 힘을 핥는다.

혀가 심장을 찾아내

뛰고 뒹구는 박동을 핥는다.


혀가 나오느라 꼬리가 길다.

혀가 나오느라 귀가 빳빳하다.

혀가 나오느라 발톱이 날카롭다.

 

 

  

시론

   

시에게 시를 묻다

 

       

  1. 요즘은 사물과 교감하고 대상과 하나가 되는 순간의 희열을 느끼는 시적 에너지가 말라버렸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내 몸과 마음은 아파트와 자동차와 스마트폰과 온갖 편의 시설에 의존하게 되었고, 점점 사용할 일이 없는 본능적인 감각들은 몰라보게 퇴화하였고, 자연과의 친화력은 거의 상실하였다. 잠시도 지루해하거나 한눈팔 틈을 주지 않고 시간의 여백을 사정없이 메워버리는 정보 매체에 내 몸과 마음은 정신없이 끌려다니고 있다. 이제 내 몸은 시를 쓰기 어려운 불구 상태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가끔은 시가 나오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시를 써오던 관성의 힘이 계속 시 비슷한 것을 반복해서 생산하고 있는 거 아냐?),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하게(왜 아직 시가 나오지? 그 건조하고 메마른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시란 놈은 도대체 뭐야?) 그런 나의 몸을 바라보고 있다. 나의 몸속 어두운 곳에 갇힌 채 나오고 싶어 하는, 자신에게 맞는 형체와 이름과 언어를 부여받고 싶어 하는 생명체가 여전히 햇빛과 바람이 있는 곳을 향해 머리를 디밀고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단 말인가.


  2. 시가 나오는 어떤 순간에는, 가끔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자기에게도 이름을 붙여달라고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가 잘 나갈 때는 잠시 뭔가 대단한 작업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써놓고 보면 그 모호한 대상에게 이름 붙이는 내 솜씨가 얼마나 어설픈지 바로 드러나게 된다. 그래도 나의 시는 더는 서정시를 쓸 수 없게 된 나의 몸을, 일상이나 사물이 내 몸속에 들어와 일으키는 사건을, 그것들이 내 몸을 침투하고 몸과 섞이면서 일으키는 은밀한 변화를 관찰하려고 애쓰고 있다. 나의 몸은 세상과 삶과 존재가 무엇인지를 정직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3. 아무런 생각이 없는 침묵 상태에 있을 때 저절로 나오는 시가 좋다. 침묵에는 말보다 더 활발한 감정의 운동, 느낌의 운동, 사유의 운동이 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침묵 속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때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더 잘 접근할 수 있고, 그것을 더 잘 경험할 수 있다. 시는 언어로 표현되지만, 경험은 침묵 속에서 일어난다.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은 언어의 영역에서 일어나지만, 느낌과 감정은 침묵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쓰다만 시나 퇴작, 발표하고 나서 후회하게 되는 내 시들을 보면 침묵의 풍요 속에서 즐기기보다는 언어에 매달리려고 애쓰는 안쓰러운 모습이 보인다.

 

  4. 어설프게 쓴 시는 다시는 시를 쓰고 싶지 않도록 좌절하게 하지만, 침묵에 몰입하는 힘이 쓴 시에는 왜 시를 쓰는지 묻게 하는 힘, 시 쓰기를 반성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일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며, 되풀이하여 시에게 물어본다, 왜 시를 쓰는가.


  “왜 시를 쓰는가. 대부분의 시인은 이렇게 물으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지 않는다. 시는 이렇게 묻기 전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유도 없이 먼저 심장이 뛰고 숨은 답답해진다. 목구멍이 근질근질해지고 손발이 뜨거워진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압박에 밀려서 먼저 시가 나온다. 처음에는 그 시가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쓰고 나서 보면 온몸을 간질이면서 시작된 정체불명의 증상이 희미하게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가 시를 쓴 자에게 묻고 있음을 알게 된다. 왜 당신은 이 시를 썼는가. 이 시를 쓴 당신은 누구인가.

 

  왜 시를 쓰는가. 이 물음은 시를 쓴 후에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시를 쓰기 전에 나온 것이다. 이 물음은 머리가 알아채기 전에 알 수 없는 형태로 몸에서 나온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이 물음을 묻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좋은 시는 왜 시를 쓰는가를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이 질문으로 멍하게 만든다. 이 질문으로 맨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던 알 수 없는 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왜 시를 쓰는가. 시인은 이 물음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 아니 자기도 모르게 대답하게 된다. 이 대답을 하기 위하여, 이 대답을 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시를 설레게 한다. 언어를 쓰는 인간의 근원을 설레게 한다. 언어 안에 있는 언어 너머의 무한한 잠재적인 세계를 설레게 한다. 맨 처음 온몸을 근질근질하게 했던 미지의 힘을 깨운다. 이 물음이 죽은 시는 계속 읽게 하는 힘이 없다. 아무리 많이 대답해도 다 대답할 수 없는 이 물음이 시를 긴장시키고 시를 새롭게 하고 계속 시를 쓰게 한다.”

 

 

 

    

 

   김기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갈라진다 갈라진다울음소리만 놔주고 개는 어디로 갔나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