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잠
정연홍
미루나무 그늘에서 잠든 적 있다
파리가 마른 침을 다 핥아 먹는지도 모른 채
시원한 잠 속의 세상
호접몽胡蝶夢을 보았다
깨었을 때 아무도 없어
엄습하던 한기
잠은 세상을 단절시켜 주는
모르핀 같은 것
고통 없는 마약 같은 것
겨울엔 그늘을 피하고 싶었고
가지는 회초리가 되어 종아리를 때릴 때도
있었다
나무의 그늘에 덮여 자란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줄기가 무너져 내리고 뿌리가
대지 밖으로 삐져나올 때의 맨살
그건 먼
옛날 우리 이야기
나비는 어디든 팔랑거리며 간다
정연홍 시인
1988년《부산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2005년《시와시학》등단.
시집 『코르크왕국』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