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
  • 신작시
  • HOME > 신작시 > 신작시

2024년 4월호 Vol.34 - 하여진



 가난의 미학

 하여진






 쥐뿔도 없는데 허영기라도 있어야지
 火류계 30년에 빤스와 브라자만 남았네   

 최고의 고통이 존재하는 곳에 최고의 미가 존재한다니
 똥 싸고 매화타령하는 좆 까는 소리 집어치우고  
 옥탑방이든 지하방이든 가난은 중간이 없다 

 한때의 노숙 생활이 내겐 인생의 프로방스
 헐거워야 꿈을 꿀 수 있는 열차 커플러처럼     
 상자를 묶을 수 있는 건 쇠가 아니라 테이프
 혹독한 생의 가장자리를 견디게 해준 건 이불이 아니고 비닐이다 

 거룩한 체념의 불온자
 내가 안 휘어지니 세상이 휘어지는구나 
 땡전 한 푼 없는 막막한 하늘들이 
 걸핏하면 낙담에 빠져 쇠락해지고    
 날씨가 없는 노래들은 생기와 의욕을 얻는다 

 7등급 수급자 신분으로 
 틈만 나면 아파서 죄송하고 
 최선을 다한 행복에 굶주려 죄송하고

 뚜껑 열어둔 사인펜처럼 희망은 아무리 눌러 써도 희미하다

 쓰러져야 이기는 볼링핀처럼
 한 면 안에 슬픔을 모을 수는 없는 일

 마파람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베껴 
 창문에 걸고  

 바람 빠진 침대 위
 동굴에 매달린 박쥐의 자세로 누워 
 젖은 절망이라도 와라 
 뜨겁게 와라 










  

 하여진 시인
 2009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Itaewon 곰팡이꽃』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