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
-모두 떠나도 바닥을 주저하지 않는 것들
김지율
큰 돌을 들자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흰 물고기들이 쏟아졌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뜨겁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평등하다고
숨겨둔 고백을 할 때마다
(죽은 것은 죽은 것의 안으로 들어가
죽은 것을 깨고 나온다)
두 발의 당신과 세 발의 내가 심장을 움켜쥔 채
징검다리도 없는 시간을 나란히 걸으며
엄지와 검지로 네모를 만들어
당신이 놓아버린 얼굴을 그 안에 담으면
네모는 새인 것 같고
네모는 구름인 것 같고
네모는 또다시 물고기 같아
당신은 내가 죽은 바다에 물고기가 되어
눈을 지우고 인간의 말을 잊은 사람처럼
가장 긴 파도 위를 헤엄쳐 간다
이 지구 어디에나 푸른 바다는 있어
인간이 인간을 잊고
인간이 인간을 견디듯
다음 생은 부디 인간이 아니길
이미 붉은 등을 돌리면 피는 차갑고 지느러미는 뜨거운
더 아름다운 해변에서 다시 만나길
김지율 시인
2008년《시사사》로 등단.
시집『내 이름은 구운몽』『우리는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대담집『침묵』, 시네마 에세이『아직 오지 않은 것들』『나는 천사의 말을 극장에서 배웠지』, 연구서『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나의 도시, 당신의 헤테로토피아』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