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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호 Vol.33 - 김지율



 비인간
 -모두 떠나도 바닥을 주저하지 않는 것들

 김지율






 큰 돌을 들자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흰 물고기들이 쏟아졌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뜨겁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평등하다고
 숨겨둔 고백을 할 때마다 

 (죽은 것은 죽은 것의 안으로 들어가
 죽은 것을 깨고 나온다)

 두 발의 당신과 세 발의 내가 심장을 움켜쥔 채
 징검다리도 없는 시간을 나란히 걸으며 

 엄지와 검지로 네모를 만들어
 당신이 놓아버린 얼굴을 그 안에 담으면

 네모는 새인 것 같고
 네모는 구름인 것 같고
 네모는 또다시 물고기 같아

 당신은 내가 죽은 바다에 물고기가 되어
 눈을 지우고 인간의 말을 잊은 사람처럼
 가장 긴 파도 위를 헤엄쳐 간다

 이 지구 어디에나 푸른 바다는 있어
 
 인간이 인간을 잊고
 인간이 인간을 견디듯
 다음 생은 부디 인간이 아니길

 이미 붉은 등을 돌리면 피는 차갑고 지느러미는 뜨거운
 더 아름다운 해변에서 다시 만나길










  

 김지율 시인
 2008년《시사사》로 등단.
 시집『내 이름은 구운몽』우리는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대담집침묵시네마 에세이아직 오지 않은 것들나는 천사의 말을 극장에서 배웠지연구서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나의 도시, 당신의 헤테로토피아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