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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호 Vol.33 - 아 은



 그림자의 그림자

 아 은






 그림자의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짖는다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진다

 그림자의 눈은 자신이 가려는 방향을 보지 않는다 밤에는 방향이 없다 가지 않으려는 방향도 보지 않는다 아무 데도 보지 않고 모든 곳을 본다 그래서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그림자는 꽃무늬 린넨 테이블보에 웅크리고 앉아 창밖 산사나무 가지 위로 새 떼가 날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기도 한다

 산책을 하자고 보채면 나는 맨발로 그저 맨발로 그림자를 끌고서 산책을 한다

 공원에는 긴 목줄을 한 또 다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타난다 걷다가 여러 번 멈춰 냄새를 맡는다 킁킁, 사라지기 전에 기억하려는 듯이

 그림자의 목줄을 잡아당기면 주위가 어두워진다 어둠이 계절처럼 번져 여름의 목줄을 풀어놓고 불안한 마음이 마음 바깥으로,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그림자가 으르렁거린다
 나의 그림자는 납작해져 나의 몸으로 들어오고
 날것과 길것들은 몸을 감추고 소리들이 몰려왔다

 여름은 무르고 이마는 뜨겁다

 그림자는 그림자의 그림자다 이제 짖지 않는다 밤의 발소리만 들린다

 사라지면 어쩌나, 사라지지 않는









  

 아은 시인
 2022년시와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