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
  • 신작시
  • HOME > 신작시 > 신작시

2024년 2월호 Vol.32 - 한정원



 토트넘

  한정원






 잔디는 연둣빛 그림자 아래서 소생한다. 
 초록을 살리는 초록
 흙냄새가 섞일 때까지 농도를 맞추고 빗줄기를 기다린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도착한 사람들, 달리는 시간 뒤에 언제나 따라붙는 번호, 정지! 나는 잔디의 등을 타고 미끄러지다가 깨진 이마에서 풀의 깊이를 새기며 정지한다.

 가만히 있으면 엄지발가락 발톱이 자라 걸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걷어차기 위해 원형 경기장으로 들어온다, 발톱을 갈고 공이 진두지휘하는 허공에서 뾰족해진 손톱은 발톱을 닮아간다. 

 유리 돔 아래서 지게차는 뒤엎어진 잔디 뿌리를 다시 심고 때로는 포쇄를 하며 햇살과 바람을 섞어놓는다. 쓰러진 풀의 자세는 자벌레처럼 기어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주저앉고 튀어 오르고 넘어지며 달려가던 하늘이 수만 가닥의 풀밭 위에 누울 때까지.

 축구가 끝나고 야구가 끝나고 잔디는 게이트 입구에서 고요한 기록을 기다리며 뒤척인다. 동굴 속을 통과한 출입구 계단이 ‘나의 운명’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태우고 잠자리처럼 카메라를 따라간다. 

 잔디는 갈라지다가 다시 만나고 스프링클러 방향으로 각도를 틀다가 관객이 나타날 때쯤 전복한다. 잔디 없이는 상처도 없고 함성도 모이지 않는 시끄러운 행성. 

 잔디가 응원을 마치고 물을 마실 때 식당은 문을 연다. 잔디를 밟으며 유니폼은 곡선으로 사라진다.









  

 한정원 시인
 199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석류가 터지는 소리를 기록했다』『마마 아프리카』『낮잠 속의 롤러코스터』『그의 눈빛이 궁금하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