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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호 Vol.28 - 최보슬



 신은 우산 속에 있지 않는다

  최보슬






 기도 중이라고 했다

 꽉 다문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움켜쥐지만

 으깨지면서 으깨지지 않는다

 세상은,

 목사가 믿음을 연출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뻔한 기도를 자주 잃었다

 온도를 찾아다니는 진한 표정들

 비가 내리면
 우리는 항상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기도를 했다

 언제든지 처음 만난 숫자가 됐다

 신은 제자리에 있지 않고
 우리는 돌고 
 또 돌아

 지구 곁에 앉고 싶지만
 도저히 지구는 멈추지를 않는 것이다

 꿈속의 기도와 기도의 발목이 젖고 있는 꿈

 어느 날엔가 
 우리가 겹쳐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는 실수의 맞춤법일까

 믿음이 
 불시착할수록
 기도의 내력이 선명해졌다

 턱을 괴고 어둠을 보는 그는
 영영 입 맞추는 법을 잃어 버렸고

 흘리고 싶지 않은 기도들을 흘려가면서
 두 눈을 깜빡이지만
 세상은 으깨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데도 펼쳐진 우산이 있고

 기도를 하듯 우산을 썼지만
 신은 우산 속에 있지 않는 것이다

 가장 먼저였던 마음을 찾아다닌다

 무엇이든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
 교회를 나와 온몸을 굽혀 운동화를 신을 때

 모든 사물이 기울고
 기우는 건 모두에게 정수리를 보여주는 일

 이제는 꿈속 흑백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
 내가 낳지 않은 나라는 아이

 신은 텔레비전 속에도 계시지 않고
 지구는 날씨를 통해 설명을 하지

 우리는 울면서도 사랑을 하고
 눈물이 흐르면 우산을 썼다

 서 있는 곳에서부터 헤아릴 수 있는 곳까지만 기도를 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세수를 하고
 가만히 있기엔 우리는 너무나 살아 있어서
 창밖을 본다
 신과 나는 아무 관계가 아니다

 이제는 우산을 접고
 신은 조금씩 자라나고
 나는 많이 가지고 논 종이 인형처럼 
 찢어져 갈까?

 우리가 우리를 겹친 세상은 
 실수의 맞춤법일까?

 기도의 길이가 사람을 변화시켰다
 나는 신 옆에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분명한 건데

 신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최보슬 시인
 2023년 문학뉴스&시산맥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