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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Vol.27 - 손유미



 시르죽은 이 세계
 내 삶의 저 어깨

  손유미







 내 노인의 젊은 날이

 폭폭

 하얀

 누에를 찐다

 파란 

 뽕잎만을 먹어낸 누에가 얼마나
 깨끗한지 아느냐며

 폭폭

 누에를 찔 때,

 삶은 다른 데에 있었을 것 같다
 이 예감이 나를 괴롭힌다

 내 젊은 노인 날은 

 폭폭

 하얀

 누에를 찌고

 폭폭

 고치같이 살이 찐 눈은 날리고 

 내 삶의 찢어진 어깨는 어디에서 눈을 피하나 
 저 눈의 배를 갈라 어깨라도 기웠으면……

 다 익은 누에를 
 내가 씹어 삼켰다

 주어진 것을 모조리 다 먹는 것은 
 깨끗하구나 

 내 노인의 별미 
 이만큼의 깨끗함 

 몸이 말하지 않는 법을 잊어갈 때에도,

 삶은 다른 데에 있었을 것 같고
 이 예감에 나는 괴롭고 

 이대로라면 도리 없다 
 다시 태어날 수밖에

 예감, 

 저 세계 내 머리에 닿는다

 새치가 는다
 저만큼의 깨끗함으로 
 










 손유미 시인
 2014년《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탕의 영혼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