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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Vol.27 - 반칠환



 킬리만자로의 표범

  반칠환






 사냥도 잘하는 하이에나가 왜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겠는가.

 어떤 표범이 나라 잃은 선비처럼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죽겠는가.

 하이에나가 갖지 않은 하이에나
 표범이 갖지 않은 표범 정신아.

 만년 설산이 제 김에 녹겠는가.
 셰르파의 주검과 플라스틱아.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진다면 운동이나 명상을 하라.

 진실로 귀뚜라미를 사랑한다면,
 네가 산 흔적을 남기지 마라.

 정말로 라일락을 사랑한다면,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져라.

 네가 살고 있는 걸 이십일 세기가
 간절히 원했다고 생각해도 좋으나

 80억 과대망상과 함께 사는 생명들은
 간절히도 생각이 다른 것 같다.
 










 반칠환  시인
 1992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웃음의 힘』『전쟁광 보호구역』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