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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Vol.27 - 양수덕



 멀리 레몬 나무가 자란다

  양수덕






 가느다란 비가 질기게 발등을 묻었다 
 너무 가늘어서 걸려 넘어지는 이가 없어

 그렇게 그녀 땅의 굳은살로 스며들었다 달아날 수 없었고 가슴까지 묻으니 비명이 새나가지 않았다

 젖은 영혼이 잠시 머무는 빛 한 올 엮이지 않는 곳은 추락의 기억이 눈망울을 홉뜨고

 학교는 어금니가 흔들거렸다
 닫힌 창문 같은 아이들이 덜컹덜컹 그녀의 꿇은 무릎 위에서 시소 놀이, 태풍의 눈을 단 학부모들의 혓바닥은 전원을 풀어놓은 잠자리까지 쳐들어왔다
 
 비의 살에 그녀의 속앓이 흘러 흘러서 비의 뼈에 갇힌 혼잣말

 비의 마지막 한 방울이 반짝, 학교를 쏟아버렸다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폐허 모두의 미래는 숨이 죽고 
 찢긴 종이 구름처럼 날아다니는 교실 
 꽃이라 부르는 가면들 아름답게 얼굴 바꾸느라 손거울을 꺼냈다
 












 양수덕  시인
 2009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신발 신은 물고기』『가벼운 집』『유리 동물원』『새, 블랙박스』『엄마』『왜 빨간 사과를 버렸을까요』『자전거 바퀴』,
 산문집 『나는 빈둥거리고 싶다』, 동화 『동물원 이야기』, 소설집 『그림쟁이 ㅂㅎ』『눈 숲으로의 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