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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 Vol.27 - 김혜천



 원근법으로 다가가는 성소

  김혜천






 겁에 겁

 잠자리가 날개로 바위를 쳐 
 가루가 될 때까지 걷고 걸어 도착한 
 여기 지구는
 푸르고 건조하고 습하다 

 태생부터 위태로운 착지

 무수한 체념의 골짜기마다 이슬 맺히고
 자주 길 잃고 절벽 앞에 섰던 망명의 길

 그 길에서 
 글 만남은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漕遇     
           
 돌아가리라

 내 안에서 섧게 빛나는 원래의 자리를 향해
 허물 벗으며 벗으며 가리라 

 온몸에 젖어 들어 채색된 그리움은 
 새로운 출발의 동력

 쓰리고 아팠던 파동의 회색 음영을 
 정진의 강물로 지우며
 발자국마다 투명하고 서툰 문자 남기며
 잠자리 날아가는 폐곡선을 따라서












 김혜천  시인
 201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