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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 Vol.26 - 이 은



 레이더

  이 은






 얼마나 멀까? 
 이젠 얼마나 남았을까?

 매일 나의 일상을 포획하려는
 포획자? 억류자?  
 해변의 절벽 위에 우뚝 서서 광자를 날려보낸다 
 광자는 무얼 먹고 살까

 풍랑이 거세지는데 며칠을 굶었는데 
 해변에는 뼈만 남은 물고기들이 모래를 더듬는다  
 파도가 내 얼굴을 치는데 
 입 속에 모래가 가득해 말을 못하겠다 
 
 바닷가에는 동물 모형들이 즐비하다 
 곰 사자 고릴라 토끼 모형들은 모두 죽은 모습이다   
 죽은 아이들이 죽은 모형들 사이를 뛰어다닌다

 먹지 않아도 희미하게 해가 떠오르고  
 멜라닌 주사를 맞고 밤눈처럼 크게 눈을 뜨고
 지구 몇 바퀴를 돌아도 

 저 레이더, 레이더를 견디며 
 나의 밤을 매일 복사, 모사, 재생하려고 한다  
 쏟아지는 언어들이 가 닿을 수 있도록 
 해변에 매혹의 덩어리들을 남겨 둔 걸까 

 저것이 레이더의 속임수일까 


 레이더에 잡힌 물질은  
 그런 창작물은 순진무구하지 않다는 것
 아무 것도 없는 어떤 것의 감각을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에너지장이 넘쳐나는 레이더
 에너지장이 넘쳐나는 피라미드

 침묵의 무덤인 피라미드는 이미 죽었으나 살아있으니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혼자 가지 말아야 한다   

 피라미드가 우리의 침묵을 끌고 들어가지만 
 때로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미가 자기가 지은 거미줄에 걸리듯이
 자기가 쳐 놓은 레이더에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  

 내가 건너야 하는 동해의 밤은 어두운데 
 오징어 배들은 저마다 등불을 매달고 
 밤바다를 떠다니는 인조 영혼들을 낚는다  
 
 얼마나 멀까 
 얼마나 남았을까 

 레이더를 통과해 걸어가는 동안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 은  시인
 2006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불쥐』『우리 허들링 할까요』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