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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 Vol.26 - 김성신



 木手

  김성신






 묘지 위의 성긴 잔디 같았다
 한 움큼도 되지 않는 머리칼이
 바람으로 쓴 축문처럼 고즈넉이 흔들리고
 
 아버지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뼈 앙상한 작은 손 무릎에 얹고
 굴러가는 휠체어에 육신을 떠맡기고 있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아무 데도)
 그럼, 보고 싶은 사람이라도 (괜찮다니까)
 일평생 대패질로 잔뼈가 닳아 벗겨진 몸에서
 짧은 쇳소리만 새어 나왔다
 
 金은 水를 살리고 木 또한 火를 살리는 법
 
 아버지, 물을 많이 드시랬어요
 그래야 죽어서도 나무가 되지요
 나는 안다,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나무였다는 것을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깎는 일이 天業이었다는 것을
 
 휠체어 바퀴가 구를 때마다
 작은 흙 알갱이들이 바큇살을 굴리고 있었다
 벚나무 가지 위 고개를 주억거리던 작은 새가
 물똥을 싸고 저 멀리 날아가는 저녁
 반딧불이 버들강아지 뒤에 숨어 꽁무니 비비는데
 
 아버지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유성우가 떨어진 저기 저
 머언 곳,
 그루터기 한쪽에서 연둣빛 이파라기 뻗어 나왔다
 이리 오라는 건지, 저리 가라는 건지,
 안녕, 안녕! 호미처럼 굽은 낯익은 저
 
 栢木
 









김성신 시인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