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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호 Vol.25 - 하보경



 여름밤 산책

  하보경






 달빛과 함께 걸을게요
 아니면, 고양이 물루와

 하양과 초록, 어둠과 빛
 불협화음의 축제는 내일까지 계속됩니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산책을 합니다
 물루의 눈은 빛나고, 달빛의 꼬리는 흔들리죠


 예전에 알던 나무를 지나네요
 그림자가 커다란 나무 
 나무에 살짝 기대어 온기를  느껴봅니다
 나무에게 무얼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냥 나무만큼의 온기, 내가 아는 만큼의 온기
 네,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죠

 어떤 산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요
 어둠이 다른 어둠을 데리고 오는 걸 보며
 달빛을 데리고, 물루를 안고
 산책하고 또 산책해요

 개천을 지나고
 무궁화 나무를 지나고
 옅은 바람을 지나요
 물루의 눈이 빛나죠
 달빛이 꼬리를 흔들어요

 산책은 이런 거예요
 우울하다가도, 슬프다가도
 지구를 품은 것마냥
 생각이 많아지다가도
 단번에 텅 비어 없어져요
 그래서 걸어요 그냥 걸어요 

 천천히
 문제 없이 천천히
 얼굴이 없어지도록 천천히











 하보경 시인
 2014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쉬땅나무와 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