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산책
하보경
달빛과 함께 걸을게요
아니면, 고양이 물루와
하양과 초록, 어둠과 빛
불협화음의 축제는 내일까지 계속됩니다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산책을 합니다
물루의 눈은 빛나고, 달빛의 꼬리는 흔들리죠
예전에 알던 나무를 지나네요
그림자가 커다란 나무
나무에 살짝 기대어 온기를 느껴봅니다
나무에게 무얼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냥 나무만큼의 온기, 내가 아는 만큼의 온기
네,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죠
어떤 산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요
어둠이 다른 어둠을 데리고 오는 걸 보며
달빛을 데리고, 물루를 안고
산책하고 또 산책해요
개천을 지나고
무궁화 나무를 지나고
옅은 바람을 지나요
물루의 눈이 빛나죠
달빛이 꼬리를 흔들어요
산책은 이런 거예요
우울하다가도, 슬프다가도
지구를 품은 것마냥
생각이 많아지다가도
단번에 텅 비어 없어져요
그래서 걸어요 그냥 걸어요
천천히
문제 없이 천천히
얼굴이 없어지도록 천천히
하보경 시인
2014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쉬땅나무와 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