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모자
권정일
모자를 독서 한다, 모자이크 하듯이
눌러 썼다고 모자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자는 다루는 것이 아니라
추리해야 할 목록
올리버는 모자를 아내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 모자는 물음표뿐이야
저 모자는 초유의 관심사가 없네
이 웃는 모자는 변함이 없고 저 모자는 모자를 모르고 온통 혼자 쓰는 모자
올리버, 모자를 어떻게 독서 해야 할까요
모자를 왜 독서 합니까? 쓴다는 행위를 두고, 그냥 쓰세요
그리고 모자를 판단하지 말아주십시오, 올리버는 이렇게 말할 거 같다
가장 꼭대기에 내려앉은 빛이 모자라는 걸
내가 알아차렸을 때
폐도라 버킷 파나마 브르통 카플린 클로슈 벙거지…… 가 있었다
테두리에 무엇을 고명으로 얹을까 고민하면서 모자를 쓴다, 쓴다는 행위에는 언젠가는 벗는다, 가 들어 있어
모자를 쓰는 건 어떤 이야기를 훔치는 것과 같아
훔쳐서 내 모자로 쓰는 것이다
극장을 훔치고 아이를 훔쳤다 극장을 쓰고 아이를 썼다 사슴을 훔치고 사슴의 관을 썼다
관을 쓰면……
모든 것이 가능했다
*올리버 색스
권정일 시인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어디에 화요일을 끼워 넣지』 외 3권.
산문집 『치유의 음악』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