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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호 Vol.25 - 임경묵



 국수의 탄생

  임경묵






 이젠 수국을 만날 수 없습니다

 별정 우체국 화단에 앉아
 바람을 흔들며 콧노래나 흥얼대던 수국이
 오늘 아침엔 은근 나를 떠보더라고요
 수국이 피었다길래 왔지
 누구를 기다리는 건 절대 아니다
 힘주어 말했는데도
 수국은 활짝 핀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가 그렇게 좋냐는 둥
 맨날 자전거 타고 우체국을 쳇바퀴 돌 듯하던데
 그녀에게 말이라도 걸어봤냐는 둥
 뭘 이런 걸 묻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점심때면 
 우체국 계단에 앉아 자기를 한참씩 바라보다 가는데
 편지를 자기에게 주면 
 득달같이 그녀에게 전해주겠다는 거예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녀에게 주려고 밤새 쓴 편지를 
 수국에 건넨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편지가 잘 배달됐나 조바심 나서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우체국으로 달려왔는데
 수국이,
 수국이 말입니다……
 저희끼리 내 편지를 돌려 읽느라
 우체국 계단이 꽃 범벅이 되도록
 하하 호호 웃다가
 나랑 마주치자

 덜컥, 국수가 돼버린 겁니다.
 〈후략〉












 임경묵 시인
 2008년 《문학사상》 으로 등단. 
 시집 『체 게바라 치킨집』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