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 탄생
임경묵
이젠 수국을 만날 수 없습니다
별정 우체국 화단에 앉아
바람을 흔들며 콧노래나 흥얼대던 수국이
오늘 아침엔 은근 나를 떠보더라고요
수국이 피었다길래 왔지
누구를 기다리는 건 절대 아니다
힘주어 말했는데도
수국은 활짝 핀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가 그렇게 좋냐는 둥
맨날 자전거 타고 우체국을 쳇바퀴 돌 듯하던데
그녀에게 말이라도 걸어봤냐는 둥
뭘 이런 걸 묻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점심때면
우체국 계단에 앉아 자기를 한참씩 바라보다 가는데
편지를 자기에게 주면
득달같이 그녀에게 전해주겠다는 거예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녀에게 주려고 밤새 쓴 편지를
수국에 건넨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편지가 잘 배달됐나 조바심 나서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우체국으로 달려왔는데
수국이,
수국이 말입니다……
저희끼리 내 편지를 돌려 읽느라
우체국 계단이 꽃 범벅이 되도록
하하 호호 웃다가
나랑 마주치자
덜컥, 국수가 돼버린 겁니다.
〈후략〉
임경묵 시인
2008년 《문학사상》 으로 등단.
시집 『체 게바라 치킨집』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