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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Vol.24 - 이만영



 누드

  이만영






 북상 중인 
 태풍의 속보를 보는 동안 

 사진 촬영 수업 중이라고 애인한테 문자가 온다 
 모델을 초빙해서 
 누드 작품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수업받는 학생들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모델은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겠다고도 하고
 퍽! 
 누군가 실수로 조명등을 쓰러뜨렸다 
 동시에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순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태풍의 진로가 바뀐다 
 기상 캐스터가 손가락으로 태풍의 눈을 
 꾸욱 감겨주는 동안 
 쓰러진 거대한 나무가 자동차를 덮친다 
 애인은 
 카메라에 큰 용량의 메모리를 장착하고 
 고화질 작품으로 전시회에 출품할 예정이라 한다 
 지금쯤 
 카메라 셔터를 신나게 눌러대고 있을 테고


 나는 우산이 뒤집힐 것 같아
 바람 부는 쪽을 향해 방향을 돌린다 
 헤맨다 
 휘청거린다 
 자식 잃은 펭귄처럼
 흑백과 컬러의 포즈 중 
 어느 쪽이 예술에 가까울까 
 나는 
 거대한 공룡들의 탐욕과 멸망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분홍색 원피스의 기상 캐스터가 나온다는 
 넷플릭스로 채널을 돌린다

 ​창밖엔 
 모델의 무표정한 시선 
 비 맞은 나뭇잎처럼 둥둥 떠다니고 











 이만영 시인
 제8회 웹진시인광장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