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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Vol.23 - 김중일



 공기의 기억

  김중일






 공기는 다 기억하고 있다.
 너의 모든 얼굴 표정과 기분을 그리고 몸짓을.

 앞서가는 너의 얼굴을 마스크처럼 내 얼굴에 쓴다.

 온종일 걷다가 신호등 앞에 멈춰 서면 그제야 공중이 내 뺨을 쓰다듬는다.
 미래에서 만들어진 고성능의 마스크처럼.
 공중에는 무수히 많은 얼굴의 형상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떠다닌다. 바람이 머리카락처럼 자라고 흩날린다.
 공중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얼굴들의 저장소다.
 신호가 바뀌고 내가 걸음을 옮기자, 내 얼굴을 한 공중의 공기가 조금 더 생각할 것이 있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나를 대신해서 정거장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고,
 이어 건너편 인도를 보고 있다.
 보고 있다, 그곳에 제 몸을 떠난 열 살 아이가 울고 있다.

 상점과 아파트와 학교와 신호등과 건널목과 나무와 담벼락과 인도와 자동차와 아이들과 나뭇잎과 꽃과 곤충 등과 너와 내가 공중의 모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의 윤곽 위로 공중이 매 순간 재건축되고 있다. 자동차가 들이받자,
 나뭇잎이 떨어진다 공중은 다시 지어진다.
 한 아이가 거리를 떠난다 기울어진 공중은 다시 지어진다.
 아직 공중이라는 미래의 건축물이 허물어지지 않고 버티는지 알기 위해서는 공중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공중’은 세상 모든 손들을 본뜬 공기가,
 투명한 공기의 손들이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고, 얼굴을 쓰다듬는 순간의 기억으로 버티고 있다.
 그 손을 안전띠처럼 풀고 아이들이 떠난다.
 매일 공중의 이음쇠가 떨어져 나간다.

 공중의 공기가,
 유일하게 본뜨지 못하는 건 슬픔이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유일하게 기억하는 건 슬픔이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공중은 모든 얼굴의 표정과 흐르는 눈물의 윤곽을 기억한다.
 앞서가는 너의 표정이 젖은 낙엽처럼 날아와 내 얼굴을 덮는다.
 내 얼굴을 한 공중은 아직 길 건너편을 보고 있다.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어린 공중에 관한 선연한 ‘공기의 기억’을 보고 있다.












 김중일 시인
 2002년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 유령시인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