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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Vol.23 - 황은주



 오래된 겨울잠

  황은주






 집을 구하려고 기차를 탄다 
무릎에는 잊어버린 소설책이 있다 
이반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오늘 여정은 유배지를 떠나는 귀향인지 
수형인의 진지한 은둔인지 
불분명하다 
아무도 없었던 배웅의 때처럼 
작은 방일 것이다 
‘가장 먼 하늘이 보였으면 해’
해바라기가 진 뒤에는 기차를 타지 않으려고 했다  
목적지는 눈 내리는 마을 
어디에선가 폭설에 갇힌 집에 살았었는데 
동상에 걸린 손가락을 들어  
눈 속에 가장 멀고 먼 별자리를 그리고는 했었다 
기차가 지나갈 그곳엔 
시장이 없고 이정표가 없다 
북적거릴 이유도 머뭇거릴 이유도 
잠시 멈출 이유도 없는 
마지막 이사가 될까
주인공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는 괜찮았단다
아득히 구부러진 기찻길 
얼핏, 창을 향해 손 흔드는 아이가 
있었으면 싶다    










 황은주 시인
 2012년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그 애가 울까봐』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