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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Vol.23 - 김경윤

 

 


 불의 경전을 읽다

  김경윤






 누가 한사코 이 먼 이국까지 와서
 내 슬픔의 창을 두드리는가
 나는 단지 별을 찾아왔을 뿐인데
 낭만을 선사한다는 몽골의 별빛 때문에  
 누추한 게르의 밤을 허락했는데
 밤이 깊을수록 바람의 신이 데려간 
 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영하 40도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에서는  
 바람의 악사들이 켜는 모린호르의 노래
 게르의 천창으로 쏟아지는 눈송이들 
 눈물이 되어 불꽃을 적신다
 난로의 연통에 불꽃만 날고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불꽃이 날리는 것은 난로에 장작이 없다는 것
 게르에서 겨울밤을 보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지
 마음에 불꽃이 없으면 언어는 단지 연기 같은 것
 따뜻한 불을 지필 장작 같은 말 한마디 그리운 밤
 바람의 신을 추종하는 연기가 허공에 새긴 만자卍字
 밤새 마음에 새기며 타닥타닥
 장작들이 펼쳐놓은 불의 경전을 읽는다












 김경윤 시인
 1989년 무크지 민족현실과 문학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신발의 행자』『바람의 사원』『슬픔의 바닥』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