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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Vol.23 - 나금숙



 너라는 호명

  나금숙






 너를 위해 돈을 훔쳐봤다
 너를 위해 거짓말을 해 봤다
 너를 위해 죽으려고 했다
 너를 위해 붉은 옷을 입어봤다
 너를 위해 눈부신 흰 원피스를 입어봤다
 너를 위해 분홍신을 신고
 춤을 추다 추다 쓰러졌다
 너를 아케이드 앞에서 네 시간 서서 기다렸다
 너를 위해 하늘이 안 보이는 멀구슬 숲을 헤매어 봤다
 너를 위해 제비집호텔을 예약했다
 너를 위해 17시간 비행도 했다
 호수가 보이는 창가에서 두  시간 이야기를 나눈 뒤,
 나는 인사도 못 하고
 태평양에 빠지고 싶었다
 너를 위해 백 년 후 도착하는 기차를 탔다
 달리다가 넘어져 피가 흘렀다
 너를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다
 너를 위해 녹음기 앞에서 증언했다
 너를 위해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일을 했다
 왼손잡이지만 양손으로 너를 위해 
 별처럼 많은 일을 더 할 수 있다
 너를 위해 감금될 수도 있고
 납치될 수도 있다
 믹스커피만 마시고 매몰되어 한 달 살 수 있다
 너를 천년 응시만 할 수 있다

 너는 나
 너라고 호명하면서
 나를 사는 것
 곧 눈썹이 희어지겠습니다










 나금숙 시인
 2000년현대시학》로 등단.
시집『레일라 바래다주기』『그나무 아래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