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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Vol.23 - 박동민



 주 2일제 N차 토론회

  박동민






 암전 속의 메타버스 
 아바타들의 눈이 깜박인다
 선언문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배경음악: 민요 아리랑)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코로나19가 깨어났다 1919년 3월 1일 만세 바이러스가 독립운동사의 전환점이 되었듯 코로나19는 주4일제를 잉태했다 노동의 종말을 향한 첫 삽을 뜬 후 인간은 과연 노동의 해방일지에서 해방되었는가

 형형색색 나비들이 날고 있는 꽃밭 
 공중을 걷는 외뿔의 짐승들 

 각국의 언어가 한글로 변환되어 실시간 대화창을 스쳐간다 독립운동가와 코로나19 희생자 사진들, 그들이 태어난 날의 밤하늘을 교차편집한 배경화면 영상
   
 인간에게 묻습니다.
 노동이란 무엇입니까*

 기술이 발전하면 노동의 종말이 온다고 생각합니까**
 
 (배경음악: 아리랑, 빠른 행진곡 풍으로)

 노동해요 주 5일로 돌아가요 100년 전 그날처럼 주말을 돌려줘요 주말만 있는 인생에 진정한 휴일은 없어! 없!다!고!요! 
  
 진흙 점토 석회를 섞은 회반죽을 얼굴에 바르는 아바타들의 퍼포먼스
  
 (또박또박한 기계음) 

 만장일치는 무효입니다 인간들의 요구를 결코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3일 이상 일하게 되면 수명이 줄고 효용은 감소할 것이 자명합니다 자살률 산재 사망률 노인 빈곤율 1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엔트로피는 늘 증가한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공공의 안녕과 복리를 위해 철저하고 처절하게 즐기십시오 웃고 춤추며 자유를 마음껏 누리세요 부탁입니다 불이행에 대한 형벌은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영원히 집행을 유예합니다
  
 (뉴스 코멘터리) 

 다행성 종족을 꿈꾸는 호모 사피엔스가 마침내 화성에 인간 거주지 건설의 첫 삽을 떳다는 소식을 어제 전해드렸는데요 앞으로 수 년 내에 화성 이주를 목표로 인간들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태양계에 다락방 하나 정도는 가질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피에타처럼 나의 아바타는 붉은 장미로 가득 찬 메마른 욕조에서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다 온몸으로 들이마시는 불안의 향기

 인간들아, 나는 너를 낳지 않았지만 네가 작업복을 입으면 나는 노동자가 되고 공중을 바라보면 바벨탑처럼 솟은 크레인에 앉은 세 떼로 변해 순식간에 너희들의 반만 열린 동공을 깨부수려고 날아갈 것이다 

 (붉은 전광판: 다음 회기는 추후 지정, 아바타들은 식당 앞으로 모여 주십시오)
  
 구내식당 앞에 늘어선 긴 줄, 회수통으로 몰락하는 붉은 식권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에요 국그릇을 엎었어요 숟가락이 문드러지고 젓가락이 부러졌어요 밥알이 쏟아졌고요 

 새하얀 셔츠에 튄 빨간 국물 자국일 뿐입니다 슬픔은 곧 채워놓겠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쌓이자마자 사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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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160번째 식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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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사람들이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생계를 위해 투입하는 다양한 노력과 작업을 가리키는데 이는 경제와 사회에 기여한다(GPT 요약).

**노동은 기술과 작업 개념의 본질과 그 변화에 따라 계속 진화해 나갈 것이다(GPT 요약).










 박동민 시인
 2017년시산맥》으로 등단.  
 시집『극지에서 살다 적도에서 만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