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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Vol.23 - 최규리



 대리운전자와 안티고네의 매드 무비

  최규리






  우리는 잠이 든다 전진하면서 잠이 든다 운전자는 능숙한 솜씨로 가로수길을 빠져나간다 창밖의 네온들이 긴 실뱀들을 풀어 놓는다 골목으로 접어든 순간, 쿵! 둔탁한 물체와의 강렬한 접촉 붉은 열매가 총알처럼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뒷자리는 눈물로 가득 찬다 제발, 무덤을 주세요 대리자는 문을 열고 나간다 어둠 속에서 어깨가 들썩인다 빠르게 바닥에서 물러난다 병원은 언제나 무섭고 멀다 길 위에 있는 대리운전자는 차 안의 여인의 입을 틀어막는다 열매는 핏줄로 엉켜있다 모래를 뿌리게 허락하세요 맨드라미는 지속되어야 해요 지나간 맨드라미와 억울한 맨드라미 또는 흙투성이와 피투성이가 난무하는 골목에 열매들이 뒹굴었다 실뱀들이 가득 찬 곳으로 빨리 빠져나가야 하지 대리자는 대리자 일 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만지든 대리자에게 책임을 묻지마 그는 검은 물체를 그대로 둔다 골목은 매우 아득한 피와 봉인된 입술이지 맨드라미는 무덤으로 가야해요 꽃잎이 없어요 대리자는 손수건으로 자동차를 닦는다 병원에 가는 길은 언제나 멀다 대리자는 자격증이 없어도 언제나 잘하고 무엇이든 잘한다 캄캄한 골목은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 병원은 킥킥거리는 간호사들을 만든다 찬란한 실뱀들이 엉켜있는 거리에 자동차 키를 걸어두는 일은 전혀 공포가 아니다 복부를 절개하고 피부를 열어놓는 쉽고 빠른 일상에 간호사들이 열매를 베어 문다 병원은 언제나 바쁘고 언제나 안전하다 제발, 무덤을 주세요 모래를 뿌리게 허락하세요 좋아요 오늘의 일을 묻어둡시다 차의 소유주라는 사실이 평생 공포라는 것을 묻어 둡시다 열매를 묻어둡시다 열매는 꿈틀거리지 않아 그저 고요한 땅과 같아 꽃잎을 밀어냈던 열매는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을 기는 것은 실뱀이 아니다 대리자는 나이프를 꺼낸다 복부를 절개하고 피부를 열어놓는 쉽고 빠른 일상과 하얀 거즈가 무덤처럼 쌓인 밤, 대리자는 무엇을 했을까 CCTV도 없이












 최규리 시인
 2016년시와세계로 등단.
 시집 질문은 나를 위반 한다인간 사슬』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