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조기조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아
협상을 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10여 년 대법원까지 지난한 싸움에 뛰어들어
단체교섭을 통해 버젓한 노동조합
사무실도 얻어내고 상근을 한다
40대 후반에서 그렇게 50대 후반이 된 처녀
그 여정에 나도 몇 차례 집회에 참석해서
한 30여 년 만인가? <동지가>를 다시 불러봤다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 이대부속병원 앞
동대문과 혜화동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
백골단에 갇힌 한 처녀를 감싼 채
쇠 파이프에 어깨를 맞고 쓰러지던 날
<동지가>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 동지들 다 어디로 갔나 정치가가 아니니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일 리 없고
옛 동지가 다 오늘의 동지일 리도 없다
동지는 간 데 없고 나이만 먹어가나
중년의 아내가 된 그 처녀만 여전하다
조기 조 시인
1994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낡은 기계』『기름미인』『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