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
  • 신작시
  • HOME > 신작시 > 신작시

2023년 4월호 Vol.22 - 배정원



 검둥개 

  배정원






 검둥개, 붉은 눈의 검둥개에게 쫓기다 깬
 한밤중이다 눈이 내린다
 발이 없던 질주와 소리 없던 절규가 
 먼지 낀 창문 위로 떠오른다
 저 창밖에는 수천 수만의 눈송이들이
 아우성 속에 갇혀 있다

 잠시 나는 악몽의 바깥으로 나와
 눈감고 환상의 눈보라를 맞는다
 불안한 잠이 또 몰려온다 비쩍 마른 검둥개가 
 다가온다 이번엔 짖지도 않는다 붉은 눈이 켜진다
 혼란스러운 밤이다 눈 내리는 심해 속이다
 이렇게 도둑눈이 내리면 이명이 울린다, 경보처럼
 내 귓속에 몰려든 눈발들은 웅웅거리며
 죽은 눈사람들의 유언을 전해준다

 통역될 수 없는 나라의 말들이 날아다닌다
 늙은 전갈이 모래 위를 기어가는 소리
 타란툴라가 깊은 잠의 뇌수腦髓를 갉아먹는 소리 
 소용돌이치는 온갖 소음들 속에서 
 검둥개는 있다, 없다 없다, 있다 한다, 커서처럼
 눈보라 속에서 홀로 검은 점으로 깜박인다 












 배정원 시인
 1993년 《문화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지루한 유언』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