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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 Vol.22 - 박수현



 역광 

  박수현






 한 전시회에서 사람의 등만
 역광으로 찍은 흑백사진들을 보았다
 어떤 등은 온순하고 어떤 등은 사나웠으나
 하나 같이 묵묵한 동굴처럼 어둑했다

 싱싱하고 단단한 등짝이
 섣달 처마에 매달린 무청처럼 가벼워지거나
 가파르고 꼿꼿했던 등판이
 손잡이 빠진 바라지창처럼 덜컥거리는 것은 
 먼 곳에서 온 낯선 저녁이
 오래 골몰하며 들락거렸기 때문일 것이다

 쓰다 버린 이면지 같은 
 숭숭 구멍 뚫린 뻘밭 같은
 달의 뒤편* 같은 그곳, 한때 버슨분홍의
 순한 시간이 흐르던 혈맥이 쉬이 잡히지 않는다
 초록 페인트가 벗겨진 철 대문에 기댄 애먼 봄날이나
 하롱하롱 바람에 쓸려가는 꽃잎들을 바라보다가   
 고단한 뒤편의 이력들을 누설하고 있다

 각도를 잴 수 없이 허물어진 슬픔의 집채들이
 저기, 역광 속에 걸어간다
 불쑥, 허리 보조기로 모자란 뒷심을 채워야
 몇 걸음 떼시던 없는 엄마의 휘고 굽은 등도 지나간다 

 얼룩덜룩, 젖은 등판에 씌여진 자욱한 문장들  
 제각각, 멀고 먼 부록으로 기록되어 
 흐른다 
 중심이 아니어서 더 아득하고 비릿한,  


 * 장옥관 시인의 시 제목










 박수현 시인
 2003년《시안》으로 등단. 
 시집『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샌드페인팅』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