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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 Vol.22 - 이기린



 볼가 

  이기린






 잎맥에서 강의 지류를 떠올리는 계절
 세계의 축제가 열리는 동안 
 테러리스트들은 캅카스 산맥을 넘어왔다
 꽃다발을 받아 든 아이들은 죄다 인질이 되었다

 폭죽과 폭탄이 터지는 거리에 
 갓 구운 호밀빵이 진열된다

 수심을 잴 수 없지만
 또박또박 
 얼마예요, 충분해요
 눈썹을 더 높여
 왜-냐-하-면, 

 대화에 서툴러서 타이가의 그늘이 잘 보이고
 거대한 동상아, 나를 이곳에 끼워 줄 수 있겠니?
 자세가 떠오르지 않아
 알아보는 얼굴 없는 산책로에서 
 수긍해야 할 목록을 외운다

 물결과 물결이 부딪쳐도
 검은 외투 하나 통째로 묻혀 버려도 
 수위가 더 높아지지 않을 거야

 볼가는 불쑥 눈앞을 가로막지만 
 매일 호밀빵을 배달해 준다
 팔을 휙휙 내저으며 안개 속을 걷는 사람들 
 유리문을 닦는 사람들 

 으르렁거리는 핏불 앞에서도
 다시 고려해 보세요
 한번은 눈을 마주치는 거다











 이기린 시인
 2011년《시평》으로 등단. 
 시집『,에게』『겨울이 복도처럼 길어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