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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 Vol.22 - 김부회



 다소 우울한 협연

  김부회





 마무리되지 않는 문장의 쉼표 앞
 빈자리를 유령처럼 겉도는 행간과 행간 사이
 마침표를 찍는다
 빈자리였는지 애초부터 비어있는 자리였는지
 흐릿해지는 아버지의 잔상
 브람스의 머릿속에 있는 왈츠를 불러온다
 밥상을 물리고 돌아선 새벽 지나
 왕뚜껑 비닐을 벗기고 있는 거실에 벗어 두고 간 몸뻬
 어머니 질감이 푸석하다
 꿈속에서 꿈을 깨우는 사고의 인셉션
 건물을 부수고 집을 세우고 꿈을 깨우거나 재우고
 시력이 건조한 붓끝으로 물감을 흩뿌리는 아득한 안갯속
 이명이 귓속 바다를 격랑으로 숨차게 한다
 누구도 옆자리에 타기 전, 93.1 메가헤르츠를 틀곤 했다
 계절을 피처링하는 나의 단순에
 건들거리는 랩의 반복된 마디 후렴부처럼
 어김없이 등장하는 불안정한 음계들
 어머니가 자지러지게 전활 했다
 그 밤에 귓속 바다는 먼 곳으로 쓸려나가고
 입술 가장자리에 문신처럼 박혀 파르르 떨리는 지느러미 끝에서
 ‘운명하셨습니다.’
 배를 드러낸 채 둥둥 떠 있는 금붕어들이
 미아리에서 점집 찾듯 청중 없는 협연을 하고 있다
 어항 속에 비는 내리고, 밤비는 내리고
 술 덜 깬 대갈통을 후드려갈기는 봄비










 김부회 시인
 2011년《창조문학신문》신춘문예 당선
제3회 『문예바다』신인상
시집 『시, 답지 않은 소리』『러시안 룰렛』, 평론집 시는 물이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