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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 Vol.20 - 한수재



 하지 못하고, 봄

  한수재






 시인이여,
 재앙의 봄이 오고야 말았다
 그대 광활한 허공의 눈동자 속으로
 여러 개의 작은 하늘이
 태연히 들어가는 것을 훔쳐보며 
 첫 산수유 가지 아래
 남들만큼 기뻐하다가
 각자의 죽음을 생각할 때
 그렇다고 차마 하지 못하고
 축축하게 걷던 우리를
 특별히 포장할 재주도 없이
 한 번도 도착해보지 못한 별 중의 별
 모든 영혼이 안식하는 곳
 그대의 허공에서
 사로잡힘도 없이 무심히
 아름다운 졸음에 잠긴 채
 무엇보다 빠르게 꽃을 지나가리
 창자가 꼬이던 밤이 따뜻해질 때까지
 휴식에 지친 쓸모없어진 살덩이를 만지다 보면 
 달은 문드러지고 허물어져
 어떤 꽃이었는지 그의 소리를 잃어버리네
 처녀의 무자비함에 이끌리는 시인이여
 허무를 정복한 슬픈 영혼이여
 뜨거움도 없이
 하얀 둔부에 꽃을 피우고
 빈 둥지에 새소리를 채우니
 나의 봄은 오래된 무덤

 하늘은 죽었다*

 하지 못하고
 사랑한 끔찍한 것들 위로
 악마에 홀린 봄이 오고야 말았다


*스테판 말라르메 「창공」 중










 한수재 시인

 2003년《우리詩》로 등단.

시집 『싶다가도』『내 속의 세상』『그대에게 가는 길』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