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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호 Vol.20 - 변종태



 달빛에 서성이다

  변종태






 달빛이 너무 아름다워 기어 나온 지렁이는
 제 피부가 그을리는 것도 모르는 채
 하늘만 쳐다보고 있단다.

 저 달빛을 모두 읽으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거야.

 아무리 말려도 들리지 않는 엄마의 말씀,
 아가, 저건 네 꿈이 아니라, 
 악마의 유혹이야.
 잠을 자둬야 해.
 두더지가 널 유혹하는 소리란 걸 왜 모르니.

 그래도 가끔은 흔들리고 싶은걸요.
 저 달빛을 꼼꼼히 읽고 싶은걸요.
 저 섬세한 문장과 단어가 너무 아름다운걸요.

 보름이 이미 지났지만 저 문장은 여전히 유효한 거죠?
 달이 빛나는 것은 촘촘히 박힌 단어들 때문이래요.
 알아요, 그래도 설득당하지는 않으려구요.

 아가, 어서 자거라.
 달이 스러지고 있잖니.
 멀리서 두더지 발걸음 소리가 들리잖니.

 엄마, 그래도 오늘 밤은 여전히 빛나는 문장인걸요.
 천천히 읽어 볼래요.
 새벽이 오기 전에 마지막 페이지를 마저 읽을래요.

 아가, 저건 아니야.
 저건 밤의 속삭임이 아니라
 스러지는 보름달의 그림자일 뿐이야.










 변종태 시인

 1990년부터 《다층》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멕시코행 열차는 어디서 타지』『니체와 함께 간 선술집에서』『안티를 위하여』『미친 닭을 위한 변명』목련 봉오리로 쓰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