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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호 Vol.19 - 임동확



 여름의 내부

 임동확





 아무도 없으리란 걸 알고도, 바보처럼
 뙤약볕 먼지 푸석한 긴 가뭄의 강둑길 걷네
 행여 아직 거스르기 힘든 물살에 휩쓸려들까
 갓 부화한 다슬기, 송사리 치어들이 떼 지어 
 몰려있던 황구지천 개울가로 걸어들어 가네
 눈 먼 사랑은  
 여전히 각자의 운명을 떠맡은 채 말없이 
 흔들리던 아카시아, 버드나무 가로수를 지나
 한사코 바다로, 바다로만 흘러가버린
 강물처럼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 여름,
 오로지 보랏빛 토끼풀 반지를 낀 소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 강변에 서 있네
 아, 그러나 늘 짧고 아쉽기만 한 
 여름의 감각이란
 쉴 새 없이 반짝이는 은빛 강물이거나 
 그 사이 찾아든 갑작스런 어둠 같은 걸까
 이내 길 잃은 눈길은 
 가마우지들 서넛 젖은 날개 털며 쉬던,
 그 강변의 한 가운데 마구 소용돌이치는 물목
 그만 놓친 손길 길게 뻗어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흐린 강바닥을 어부처럼 더듬네










 임동확 시인

 1987년 시집 『매장시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운주사 가는 길』『벽을 문으로』『누군가 나를 간절히 부를 때』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