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돌보지 않는 밤
-1029 이태원
정채원
손바닥만 한 울음방을 꾸미고 거기 피뢰침을 꽂고
무슨 소식을 기다리나
한 짝은 우주로 갔는지 혹은 지하로 갔는지
나머지 한 짝만 유실물센터에 남아 있다
기울어진 침묵 속에 혼자 있거나
떠들썩한 시장 골목에 여럿이 있거나
아무도 돌보지 않는 밤
수화를 모르면서도 말 못하는 딸을 키운 엄마처럼
말을 버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도 버리고
차가운 바닥에 귀를 대고 있던
반짝이 장식이 떨어져 나간 구두 한 짝을
엄마는 가슴에 묻는다
얼음별로 가버린 구두 한 짝은 언제쯤 번개를 몰고 돌아올까
어쩌면 가슴 부서지던 그 골목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를 이미 부숴버린 건 아닐까
시간이 엉켜버린 사진첩 속
얼어붙은 구슬 아이스크림이
엄마의 꿈속으로 줄줄 녹아 흐르는 것도 모르고
정채원 시인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