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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호 Vol.18 - 최금진



 이것은 시가 아니다 

  최금진






 놀랍게도, 나는 아직 시를 쓰고 있다
 나잇값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 식구들이 걱정이다
 아무도 미친 게 아니어서 더 문제다
 나는 아마도 끝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타고 있는 모양이다
 종착지를 향해 곤두박질친다, 플랫폼에서 내리면  
 미치거나 자살이거나 노숙이다
 그만 내릴까, 그만 끝낼까, 눈은 침침하고
 아이들에게도 인심을 잃고
 내가 쓴 시에 영광은 없는데
 고작 나는 잡지책이 돈다발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장판 밑에서 천 년도 더 된 미라가 나오고
 내가 방바닥에다 파 놓은 구멍을 통해
 유령들이 몰래 밥을 훔쳐 먹으며 거실을 떠다닌다
 아무도 믿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고
 누구를 만나도 즐겁지 않지만
 그건 시에 홀려 산 세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다 늙어서까지 글을 쓰고 책을 읽다니
 가족들과 이웃들과 자기 자신에게까지 모욕을 주다니
 시들어가는 선인장 화분에 물 한 방울 주지 않다니
 아무도 몰래 생활비 걱정하다가 화를 내다가
 울부짖는 신파극이라니
 너무 많은 자가당착과 좌충우돌이 시를 빌미로 지나갔구나
 거실 전등엔 시커먼 나방 같은 비애가 덥수룩하다
 늙은 엄마가 팔러 다니는 채소에선 오줌 냄새가 난다
 큰애가 택배를 해서 학비를 낼 때마다 삶은 덧없이 무너진다
 출간한 시집마다 절판되듯
 누구나 다 절판된다
 신으로부터 희망을 얻어다가 과잉 복용한 적이 있는데
 병은 차도가 없고, 나는 치명적이다
 시가 나를 버리고 더 젊고 능력 있는 놈들을 찾아다닌다는 소문
 같이 죽자고 해 볼까, 한 번만 더 만나달라고 해 볼까
 다 늙은 내가, 오지도 않는 시를 질투하고 시기하며
 나는 아직 시를 쓰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시가 아니다










 
 최금진 시인

 2001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새들의 역사』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