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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호 Vol.18 - 김명은



 직면 

  김명은






 더 추워지기 전에 나를 바라봐야지 
 멀리서도 희고 빛나는 미소 속으로 돌아가야지

 마른 잎을 피해 걷다가 핏빛 단풍에 눈이 찔린 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그날 밤의 손가락을 기억해내려고
 숨을 죽이며 지나가는 발소리에 귀를 세운다 

 내 몸에 피가 나요 씻고 들어와 봐 영생을 줄게 

 마른 잎들은 넘쳐흐르고 사라질 때까지 마르고
 부끄러움은 어디든지 상처 내고 다녔다

 고해는 고개를 들 수 없다 얘야 말을 하렴
 선물상자를 받은 아이들은 떠나고
 내용을 모르는 무거운 선물을 안은 아이만 남아

 내 첫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넣은 너와 네 몸을 넣은 너와
 너의 그것을 잠든 내 손에 쥐여준 너는 다르다 
 너를 모르는 나는 내 유년의 토끼를 끌어안고 울지
 
 그날 이후 아이는 무엇으로 천진했을까 

 생명을 주신 신의 뜻이니까 얘야 내 몸을 받아들이렴
 둥글게 만 몸을 일으켜야지 마주 보면 가해자가 웃는다

 십자가는 무슨 불기둥을 지고 가야지
 없음에서 와서 없음으로 가야지

 한 겹 두 겹 내 얼굴을 벗기고 알몸의 마음으로
 더 늦기 전에 나를 바라보는 어린 나를 안고 떠나야지












 김명은 시인

 2008년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사이프러스의 긴 팔이 있음.